
1945년 사우디아라비아의 페르시아만 한복판에서 맺어진 퀸시 협정은 미국과 중동이 결속하는 첫 단추가 됐습니다. 그 이후 70년 넘는 세월 동안 양측은 석유‧안보‧이념이라는 세 축을 따라 긴밀히 협력하면서도 첨예하게 갈등했습니다. 이번 글은 시리즈 두 번째 편으로, 미국과 중동의 동맹사가 어떤 경로를 거쳐 오늘날 다극화 국면에 이르렀는지 한눈에 살펴보고 앞으로의 변화를 전망합니다.
1. 1945–1960. 냉전 태동기와 석유 안보의 탄생
1.1. 퀸시 협정: 석유와 보호의 맞교환
1945년 2월 루스벨트 대통령과 이븐 사우드 국왕은 미 해군 순양함 퀸시호에서 원유 공급과 군사 보호를 상호 보장했습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 매장량을 가진 사우디 원유를 확보했고, 사우디는 패권국의 안보 우산을 손에 넣었습니다. 이후 미국의 중동 관여는 ‘석유 확보’와 ‘소련 봉쇄’를 핵심 목표로 삼았습니다.
1.2. 트루먼 독트린과 봉쇄 전략의 남전선
1947년 트루먼 독트린은 터키·이란을 포함한 중동 남부 국가를 소련 확장의 방파제로 설정했습니다. 1953년 CIA 주도 모사데그 축출(아작스 작전)은 정치 개입의 선례가 됐고, 미국은 석유 자산을 보호하면서 현지 정부를 친서방으로 유지하려는 노선을 강화했습니다.
2. 1960–1979. 석유 무기화와 페트로달러 체제
2.1. OPEC 창립과 산유국 협상력 확대
1960년 이란·이라크·사우디·쿠웨이트·베네수엘라 5개국이 OPEC을 결성하며 중동 산유국의 유가 협상력이 높아졌습니다. 이때부터 ‘석유는 무기’라는 인식이 국제정치 무대에서 자리 잡았습니다.
2.2. 1973년 1차 오일쇼크
욤키푸르 전쟁 지원에 대한 보복으로 산유국들은 원유 수출을 제한했고, 유가는 300% 넘게 폭등했습니다. 미국과 서방은 ‘가솔린 배급표’를 도입했고, 중동은 ‘오일머니’를 축적해 국내 인프라와 서방 무기 구매에 투자했습니다.
2.3. 페트로달러 체제의 완성
1974년 비공개 미‧사우디 협정 이후 모든 원유 결제 통화가 달러로 사실상 고정됐습니다. 중동 산유국이 벌어들인 달러는 다시 미국 국채와 방산 계약으로 흘러들며 ‘페트로달러 순환’이 시작됐습니다.
3. 1979–1991. 이슬람 혁명과 걸프 균열
3.1. 이란 혁명, 반미 정치 이슬람의 부상
친미 팔라비 왕정이 시아파 신정체제로 교체되자, 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태가 444일간 이어졌습니다. 미국은 이란을 상실한 대가로 걸프 왕정국 및 이스라엘에 더 의존하며 중동 구도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3.2. 이라크–이란 전쟁과 이중 억제
1980년 전쟁에서 미국은 이라크를 제한적으로 지원하며 두 경쟁국을 모두 소모시키는 ‘이중 봉쇄’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동시에 페르시아만 유조선 호위로 석유 흐름을 관리해 중동 에너지 공급망을 지켰습니다.
4. 1991–2001. 단극 Pax Americana와 미군 주둔 확대
4.1. 걸프전과 군사 기술의 비약
1991년 다국적군은 100시간 만에 쿠웨이트를 해방했고, 미국의 정보·정밀유도무기 체계가 전 세계에 각인됐습니다. 이후 카타르 알우데이드, 바레인 제5함대 등 미군 기지가 확충되면서 중동 방어선이 견고해졌습니다.
4.2. 오슬로 협정, 평화 중재의 양면성
클린턴 행정부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자치권에 합의했지만, 정착촌 확대와 극단주의 테러로 좌초했습니다. 미국의 친이스라엘 기조는 중동 반미 정서를 키우는 요인이 됐습니다.
5. 2001–2011.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
5.1.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침공
9·11 테러 직후 미국은 탈레반과 알카에다 제거를 명분으로 아프간 전쟁에 착수했고, 2003년엔 대량살상무기 의혹으로 이라크를 공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동에서 신정 ·종파 갈등이 격화됐고, ISIS 같은 극단주의 단체가 부상했습니다.
5.2. 민주주의 수출 전략의 한계
부시 행정부는 ‘자유의 아젠다’를 내세워 선거 제도와 헌법을 지원했지만, 부족 중심 사회와 종교 구도가 맞물려 사회 혼란과 반미 감정만 자극했습니다.
6. 2011–2021. 아랍의 봄과 다극화 전조
6.1. 민주화 운동, 전통 동맹의 균열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물결이 이집트·리비아를 관통하면서 미국은 인권 가치를 지지하면서도 기존 왕정 동맹을 잃지 않으려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이는 중동에서 미국의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6.2. 시리아·예멘 대리전
시리아에서는 러시아가 정부군을, 미국이 반군을 지원했고 예멘에서는 사우디와 이란이 후티 반군을 두고 각축전이 벌어지면서 중동이 강대국 대리전 무대가 됐습니다.
7. 2021–2025. 다극화 가속과 BRICS+ 확장
7.1. 중국 중재 외교와 사우디–이란 수교
2024년 베이징 합의로 사우디와 이란이 수교를 복원하면서 중국이 중동 외교의 핵심 중재자로 부상했습니다. 이는 미국 중심 질서가 균열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7.2. BRICS+ 가입과 탈달러 실험
사우디·UAE·이란이 BRICS+에 가입해 원유 위안화 결제, 국가 통화 스와프를 시도하면서 달러 패권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레버리지는 상대적으로 축소되지만, 안보 우산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8. 평가와 전망
8.1. 거래형 동맹에서 복합 파트너십으로
석유―안보 맞교환 모델은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미국은 에너지 전환, AI·반도체 공급망, 해양 안보 등을 묶은 복합 파트너십으로 중동과 관계를 재설계하려 합니다.
8.2. 한국의 전략적 옵션
한국은 원유 수입 68%와 건설 수주 15%를 중동에 의존합니다. 따라서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방산 수출 확대·이란 제재 리스크 관리’라는 3트랙 전략이 요구됩니다.
용어 해설
- 퀸시 협정: 1945년 미‧사우디 간 원유 공급과 군사 보호를 맞바꾼 협정.
- 페트로달러: 전 세계 원유가 달러로만 결제되도록 한 금융 구조.
- 아랍의 봄: 2011년 중동·북아프리카 전역에 확산된 민주화 운동.
- 대리전: 강대국이 직접 충돌 대신 제3국을 통해 벌이는 간접 전쟁.
- 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5개국에 사우디·이란 등 6개국이 추가된 확장 경제 블록.
자주 묻는 질문
Q1. 미국은 여전히 중동 주둔을 유지할까요?
석유 의존도가 줄었어도 해상로 보호, 테러 억제, 이스라엘 방어, 반중·반러 전략 요인을 고려하면 당분간 철수는 어렵습니다.
Q2. BRICS+가 달러 패권을 약화시킬 수 있나요?
단기간 내 완전 대체는 힘들지만, 원유 위안화 실험과 디지털 통화가 병행되면 달러 의존도는 점진적으로 낮아질 수 있습니다.
Q3. 한국은 중동 다극화에서 어떤 기회를 찾을 수 있나요?
수소·재생에너지 협력, 스마트 방산 패키지, 인프라 디지털 전환 사업 등이 유망합니다.
참고 사이트
- Office of the Historian, U.S. State Department: 미국–중동 외교사 1차 문서 아카이브
- 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세계 석유·가스 생산·소비 통계
- International Monetary Fund: 페트로달러·BRICS 관련 금융·경제 보고서
- Carnegie Middle East Center: 중동 지역 분석·정책 브리프
참고 연구
- Bromund, A. (2023). The Petrodollar and U.S.–Middle East Relations. Journal of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27(3), 415-438.
- Abu-Lughod, J. (2024). Post-American Order: Multipolarity in the Middle East. Geopolitics, 29(1), 1-25.
- Lee, J. (2025). Energy Transition and Korean Security Strategy in the Middle East. Asian Journal of Security Studies, 14(2), 5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