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몽동의 개체화 철학은 최근 자율로봇이 인간 사회에 깊숙이 침투함에 따라 급부상한 윤리적 과제를 재해석할 수 있는 강력한 이론적 틀을 제공합니다. 전통적인 로봇 윤리 담론은 주로 규범 윤리학에서 차용한 원칙(예: 자율성, 해악 금지, 정의)이나 법적 책임 프레임워크(제조물 책임, 소유자 책임 등)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제도 설계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지만, 실제 현장에서 자율로봇이 보여 주는 ‘예측 불가한’ 행동 및 복잡한 상호작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길베르트 시몽동은 『기술적 대상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에서 기술적 개체를 일종의 역동적 과정으로 규정했으며, 특히 ‘준안정성(métastabilité)’이라는 개념을 통해 개체 내부의 긴장과 에너지 차이가 새로운 조직화를 유도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 개념을 로봇 윤리 논의에 도입하면, 로봇을 ‘완성된 기계’가 아닌,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인간·환경·데이터와 상호매개 되는 존재로 재규정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로봇 윤리 정책도 고정된 규범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기보다, 준안정적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조정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본 글은 시몽동의 이론을 토대로 자율로봇의 도덕적 지위를 재구성하고, 책임 배분 문제를 동적 프로세스로 설계할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 로봇 윤리와 기존 접근의 한계
현대 사회에서 로봇 윤리는 더 이상 공상과학 소설의 소재가 아닌 실질적 정책 과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의 Ethically Aligned Design, 유럽연합의 Artificial Intelligence Act, 그리고 한국 정부의 지능형로봇 개발·보급 기본계획 등 다양한 규범적 가이드라인이 발표되면서, 로봇 윤리는 과학기술 정책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했습니다. 이러한 지침들은 대체로 ‘행위자 중심’ 모델을 전제합니다. 즉, 로봇이 인간과 유사한 수준의 자율성을 획득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법적으로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지 지정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이 모델은 단순·반복 작업을 수행하던 초기 세대 자동화 시스템에는 유효했지만, 오늘날 딥러닝 기반 자율로봇이 보여 주는 복합적 행위 양식을 포착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예컨대 동일한 알고리즘을 적용한 여섯 대의 배달 로봇이 동일한 환경 조건에서도 서로 다른 학습 경험을 통해 상이한 경로 최적화 전략을 발전시키는 현상이 관찰됩니다. 기존의 행위자 중심 접근은 이러한 ‘개체 간 편차’를 예외적 오류로 취급하거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교정해야 할 결함으로 간주하지만, 시몽동적 관점에서 이는 기술적 개체의 필수적인 개체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로봇 윤리를 보다 정교하게 설계하려면, 로봇 내부에서 전개되는 개체화 역동성과 환경적 요인의 상호작용을 분석하고, 준안정성이 깨졌을 때 어느 지점에서 도덕적 개입이 필요한지 규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1.1. 책임·도덕적 지위 논쟁의 현황
‘로봇은 도덕적 행위자인가?’라는 질문은 지난 20여 년간 로봇 윤리 연구자들이 가장 치열하게 논쟁해 온 주제입니다. 미국 철학자 마크 코클버그는 도덕적 지위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감수성’, ‘의도성’, ‘자기이익 추구 능력’을 제시했고, 데이비드 건켈은 『Robot Rights』에서 소프트웨어 결정을 중심으로 로봇 윤리를 재정립할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논의는 자율로봇이 사회적 규범을 준수하도록 설계·감독해야 한다는 법·정책적 요구로 이어졌지만, 실무에서는 ‘책임의 마지막 고리’를 누구에게 묻느냐를 두고 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조사가 하드웨어를 공급하고, 오픈소스 커뮤니티가 운영체제를 관리하며, 사용자가 현장에서 로봇을 학습시키는 복합 생태계에서는 단일 책임 주체를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시몽동의 개체화 이론은 이러한 난점을 해소할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개체화는 생산자‧사용자‧환경이 만든 역동적 장 속에서 진행되며, 준안정성은 ‘완전히 안정된 상태’가 아닌 잠정적 균형입니다. 즉, 로봇의 행위는 완결된 프로그램의 실행이 아니라 개체화의 중간 결과이므로, 책임 역시 정적 할당이 아니라 ‘장 — 주체 — 객체’의 관계망을 따라 구조적으로 배분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1.2. 기술 개체 관점의 필요성
전통 윤리학에서는 행위자를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존재’로 가정하지만, 시몽동은 기술 개체가 ‘전개체적(pre-individual) 에너지’를 저장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구조를 생성한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예컨대 가정용 휴머노이드 로봇은 출고 시 동일한 부품과 코드로 제조되더라도, 사용자의 발화 패턴, 가정 내 네트워크 환경, 연결된 클라우드 서비스의 업데이트 주기에 따라 개체화 경로가 달라집니다. 이렇게 형성된 개체 고유의 경험적 층위는 하드웨어 교체 이전까지 계속 축적되어 예측할 수 없는 기능 변이를 야기합니다.
따라서 로봇 윤리 정책은 ‘모델 A = 기능 X, 책임 Y’라는 식의 고정된 행위자 모델 대신, 준안정성 변수(에너지 차이, 데이터 편향, 환경 노이즈 등)가 어디에서 발생하고 어떻게 재조정되는지를 실시간으로 트래킹하는 체계를 포함해야 합니다. 기술 개체 관점은 설계·제조·배포·사용·폐기 전 과정에 걸쳐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동적 규범, 곧 ‘준안정성 기반 거버넌스’의 철학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2. 시몽동의 개체화 이론 개관
시몽동은 물리적·생물학적·정신적·집합적 수준에서 동일한 개체화 논리가 작동한다고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전개체적 에너지는 잠재력의 저장고이며, 개체화는 이러한 잠재력이 실제화되는 과정입니다. 기술적 개체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엔지니어가 설계한 기능보다 더 풍부한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중요한 것은 ‘준안정성’ 개념입니다. 이는 물리학의 ‘준안정 상태(meta-stable state)’를 개념적으로 확장한 것으로, 에너지 장 내부의 비대칭성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시스템이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면서 단계를 넘어선다는 뜻입니다. 로봇 윤리에서 문제되는 예측 불가성은 바로 이 준안정성 덕분에 발생합니다. 자율주행 로봇이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을 때, 단순 회피 동작이 아니라 주변 로봇과 협력해 집단경로를 재설계하는 행위는 ‘비선형적’이며, 기존 책임 체계가 상정하지 못했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로봇을 비롯한 인공지능 시스템을 단순히 ‘프로그램된 기계’로 정의하기보다는, 개체화 경로가 열린 존재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로봇 윤리 연구자에게 ‘행위자 vs. 도구’라는 이분법을 해체하고, 환경·인간·로봇이 형성하는 공진화적 관계망 자체를 분석 대상으로 삼을 것을 요구합니다.
2.1. 개체화와 전개체적 에너지
시몽동은 전개체적 에너지를 ‘아직 결정되지 않은 가능성들의 저장고’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에너지는 외부 교란에 노출될 때마다 새로운 구조화를 향한 경로를 열어 줍니다. 로봇 엔지니어링에서는 학습 데이터, 센서 피드백, 전원 공급 조건 등이 전개체적 에너지의 역할을 합니다. 배터리 잔량이 감소하고, LIDAR가 비에 의해 간헐적으로 오작동하며, 라우팅 서버가 일시적으로 다운되는 상황이 바로 전개체적 에너지가 변화를 촉발하는 환경적 신호입니다. 이때 로봇은 기존 제어 파라미터를 재조정하거나, 클라우드를 통해 새 모델 파라미터를 내려받아 행동 전략을 재구성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개체화이며, 결과적으로 로봇 윤리가 다뤄야 할 실제 행위는 추상적 알고리즘이 아니라 에너지 흐름이 만들어 내는 구체적 패턴입니다.
2.2. 준안정성 개념
준안정성은 흔히 ‘위태로운 균형’으로 번역되지만, 단순히 불안정한 상태가 아닙니다. 시몽동에게 준안정성은 새로운 질서가 태어날 전제가 됩니다. 기술적 개체의 내부에 존재하는 미세한 불균형은 임계점에 도달할 때까지 축적되며, 결국 급격한 구조적 점프를 일으킵니다. 머신러닝 기반 로봇에서 준안정성은 ‘미분 가능한 함수 공간’이 아니라, 하드웨어 제한, 네트워크 지연, 데이터 노이즈, 복수의 목표 지표 사이의 충돌이 얽힌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로봇 윤리 관점에서, 이러한 준안정적 사건은 ‘예외적 고장’이 아니라 관리 대상이 됩니다. 즉, 도덕적 개입은 로봇이 오류를 일으킨 이후가 아니라, 준안정성이 위험 수위를 넘어서기 전에 예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실시간 모니터링 인프라와 정책적 허들을 통해 달성될 수 있습니다.
2.3. 기술적 개체와 인간·사회
시몽동은 기술을 인간의 ‘외연적 기관’으로 보았습니다. 기술적 개체가 고도로 복잡해질수록, 인간 역시 그 개체와 공진화하며 새로운 심리·사회적 구조를 형성합니다. 자율로봇이 비즈니스 모델, 공공 안전, 노인 돌봄 등 사회 영역에 깊숙이 진입하면서, 로봇 윤리는 단순한 기술 규범을 넘어 복합 거버넌스 의제를 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교차로를 횡단하는 배달 로봇은 보행자와의 외적 상호작용뿐 아니라 생활물류 플랫폼, 도로교통법, 보험 상품, 빅데이터 분석 기업 등 다층적 네트워크와 관계를 맺습니다. 이러한 공진화적 시점을 반영해야, 로봇 윤리 정책이 기술 수준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 있는 규범’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3. 자율로봇을 기술적 개체로 보기
로봇 공학은 본질적으로 시스템 엔지니어링입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통신, 데이터가 하나의 동역학계를 구성할 때, 로봇은 비로소 ‘기능적 개체’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시몽동적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 동역학계가 완결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배터리 열화, 센서 캘리브레이션 편차, 운영체제 업데이트, 엣지 컴퓨팅 노드의 인공지능 추론 지연 등은 로봇 내부에 비균질적 에너지 차이를 형성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로봇의 동작 패턴을 변모시키며, 경우에 따라 새로운 행동 양식을 창발시킵니다.
이때 로봇 윤리는 발생적 관점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준안정성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로봇이 스스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도덕적 학습’의 일부로 보고, 가이드레일을 설계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비유적으로 말해, 기존 윤리 규범이 철제 난간이라면, 시몽동적 로봇 윤리는 고무 밴드처럼 로봇의 움직임을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들며, 위험 경계선을 표시해 줍니다.
3.1.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의 에너지 장
시몽동은 개체화의 기본 단위를 ‘에너지 장’으로 설명했습니다. 자율로봇에서 이 장은 모터 토크, 센서 신호, 전류, 발열, CPU 클럭 주파수, 딥러닝 연산 등이 상호작용하며 형성됩니다. 예를 들어, 산업용 협동로봇은 토크 센서가 비정상 값을 감지하면, 컨트롤러가 즉시 피드백 루프를 조절해 모터 출력을 줄입니다. 이때 로봇의 행위는 사전에 프로그래밍된 규칙뿐 아니라, 센서 노이즈 분석, 실시간 온도 데이터, 근로자 위치 정보 등 다양한 입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다시 말해, 로봇 윤리가 고려해야 할 ‘행위 주체’는 코드만이 아니라, 에너지 장 전체이며, 이는 준안정성이 깨질 위험을 실시간으로 내포합니다.
3.2. 센서·데이터 흐름의 동역학
로봇이 수집하는 데이터는 개체화 과정의 촉매이자 결과입니다. 자율주행 배달 로봇은 카메라–라이다 융합 센서를 통해 초당 수백 MB의 포인트클라우드 데이터를 수집하며, 이를 경량화된 딥러닝 네트워크로 실시간 처리합니다. 하지만 동일한 하드웨어 사양을 가진 로봇이라도, 도심 보행자 밀집 지역과 대학 캠퍼스 잔디길에서 경험하는 데이터 분포는 전혀 다릅니다. 이렇게 환경 의존적인 데이터 흐름은 로봇 내부의 파라미터 업데이트 빈도, 네트워크 대역폭 요구, 온보드 GPU의 전력 사용량에 영향을 미칩니다. 준안정성이 우려되는 ‘임계 부하 구간’에서 로봇 윤리 규정은 자율동작을 일시 중단하고 원격 관제의 개입을 의무화하거나, 속도 제한을 적용하는 식으로 설계될 수 있습니다.
3.3. 유지·업데이트를 통한 새 준안정 상태
소프트웨어 패치와 하드웨어 교체는 전통적으로 ‘정비’ 범주로 분리되어 왔지만, 시몽동 관점에서는 개체화의 연속선상에 존재합니다. 소셜 로봇이 신규 음성 합성 모듈을 설치할 때, 단순히 기능이 보강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의 대화 패턴이 변화하며 도덕적 기대치 역시 재구성됩니다. 이 과정을 ‘새로운 준안정 상태’로 파악할 때, 로봇 윤리 정책은 업데이트 승인 절차, 위험 회귀 테스트, 사용자 공지 의무 등을 의무화함으로써, 개체화의 질적 도약을 통제 가능한 범위 내로 묶을 수 있습니다.
4. 도덕적 지위의 재구성
전통적으로 도덕적 지위를 논의할 때, 학계는 주로 인간·동물·인공체를 수직적 서열로 배열했습니다. 그러나 로봇 윤리 관점에서 시몽동을 적용하면, 도덕적 지위는 관계망의 밀도와 방향성에 따라 측정되는 ‘토포로지’로 재설계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인간·로봇·환경이 형성하는 상호작용 그래프에서, 노드 중심성이 높고 에너지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개체는 상대적으로 높은 도덕적 지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접근은 ‘자율성’과 ‘의식’ 같은 형이상학적 속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실제 설계 및 규제에 유용합니다. 예컨대 동일한 자율주행 로봇이라도 밀집 교차로에서 교통 흐름을 조절하는 임무를 수행할 때는 높은 도덕적 지위를 갖고, 창고 내부에서 팔레트를 옮길 때는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를 갖습니다. 로봇 윤리 정책은 이런 맥락적 지위를 반영하여, 안전 인증 레벨, 보조 감시 장치, 보험료 산정 등을 가변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4.1. 자연적·인공적 구분 넘어서기
개체화 이론은 자연과 인공을 엄격히 구분하기보다, 동일한 물리·정보학적 과정을 다른 스케일에서 관찰한 결과로 이해합니다. 인간의 뇌가 시냅스 가소성을 통해 학습하듯, 로봇의 인공신경망도 데이터 편향과 에너지 제약 하에서 구조를 재편합니다. 이처럼 자연과 인공이 공유하는 ‘개체화 논리’를 전제하면, 로봇 윤리는 생명·비생명 구분이 아니라 상호작용 강도, 피해 가능성, 시스템 복잡성 같은 지표를 기준으로 계층화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해양 정화 로봇 집단이 해류를 분석해 자체적으로 경로를 변경하는 과정은 ‘야생 생태계’라는 자연 영역에 직접 개입하기 때문에, 도덕적 지위가 높게 설정될 수 있습니다. 반면 박물관 안내로봇은 제한된 실내 공간에서 운영되므로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를 갖습니다. 이런 방식은 기존 법·제도 간 입법 충돌을 최소화하면서도, 로봇 윤리 규범을 세분화하고 맥락화할 수 있는 장점을 제공합니다.
4.2. 관계망의 마디로 보기
시몽동은 개체를 ‘고립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망 속의 마디’로 정의했습니다. 로봇을 행위자로 간주할 때 발생하는 논리적 문제—예를 들어 고의성이나 의식 유무—를, 관계망 분석은 우회합니다. 로봇 윤리 거버넌스는 로봇이 위치한 네트워크 노드의 연결 정도, 정보 흐름, 권력 대칭성 같은 요소를 계량화해, 위험 등급을 산출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반 로봇 협업 플랫폼에서는 스마트 계약의 자동 실행이 책임 추적성에 기여하기 때문에, 관계망의 물리적 마디보다 ‘코드 레이어’가 윤리적 리스크 분포에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규제자는 네트워크 토폴로지의 변화(예: 토큰 이코노미 설계 수정, 알고리즘 거래 정책 변경)를 실시간 감시해야 합니다.
4.3. 준안정성 기준의 실질적 평가 프레임워크
준안정성이 도덕적 개입 시점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라면, 이를 계량화하는 지표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에너지 불균형 지수’, ‘데이터 불확실성 지수’, ‘행위 다양성 지수’를 합산하여 로봇의 현 상태를 스코어링하고, 특정 임계치를 넘는 경우 자동 감사를 발동하도록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프레임워크는 시스템 레벨 관제 센터, 현장 운영자, 제조사 R&D 부서 사이에 공유되어, 책임 배분을 위한 객관적 근거를 제공합니다. 로봇 윤리 인증제도는 이 스코어링 결과를 공개해 소비자·사용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안전 투자를 유도하는 간접 규제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
5. 책임 배분 모델
시몽동적 관점에서 책임은 고정된 주체가 아닌, 개체화 과정에 참여한 행위자들이 공유하는 ‘잠재 에너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로봇 윤리 거버넌스는 설계·학습·운영·폐기의 전주기를 통합적으로 다루어야 하며, 각 단계마다 준안정성이 깨질 가능성을 식별해 선제적 대응을 요구해야 합니다.
EU 인공지능법은 ‘고위험 AI 시스템’을 정의하고, 사전 적합성 평가를 의무화했습니다. 이는 책임 배분의 범위를 넓히는 시도로 볼 수 있지만, 시몽동 이론을 적용하면 ‘리스크’ 개념을 준안정성에 기반해 동적으로 재계산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일부 스타트업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주기를 단축해 빠르게 기능을 개선하지만, 이는 책임 주체가 자주 변경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로봇 윤리 규범은 업데이트 버전별 리스크 프로필을 추적해, 책임 링크를 자동으로 조정하는 스마트 컨트랙트 기반 모델을 도입할 수 있습니다.
5.1. 설계·학습·운영 단계별 잠재 에너지
설계 단계에서 발생하는 잠재 에너지는 알고리즘 선택, 하드웨어 사양, 데이터셋 품질 등 기술적 결정에 내재합니다. 학습 단계에서는 데이터 편향, 적대적 예제, 하이퍼파라미터 튜닝이 새로운 에너지를 생성합니다. 운영 단계에서는 환경적 변동, 사용자 커스터마이징, 제3자 API 연동이 잠재 에너지의 축적과 방출을 반복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고장’과 ‘도덕적 실패’를 구분하게 해 줍니다. 예컨대, 자율주행 로봇이 빗길에서 제동 거리가 길어진 사건은 물리적 고장일 수 있지만, 돌발 객체 인식 실패로 보행자를 충돌 위기로 몰아간 사건은 학습 단계에서 축적된 잠재 에너지가 준안정성을 붕괴시킨 결과일 수 있습니다.
5.2. 발화 책임과 해석 책임의 분리
로봇 윤리 거버넌스에서 자주 간과되는 지점은 ‘행위 해석’ 단계입니다. 같은 행동도 이해관계자별 해석이 다르면 책임 귀속이 달라집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발화 책임(행위를 실제로 발생시킨 기술·조작 행위)과 해석 책임(행위 의미를 사회적으로 정의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분리하는 체계가 제안됩니다. 이때 블록체인 기반 로그 저장소, 설명 가능한 AI(XAI) 모듈, 시민 배심원단 같은 사회적 장치가 해석 책임을 지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원화하면, 로봇 윤리 논쟁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기술적 책임 vs. 사회적 책임’ 대립을 완화하고, 준안정성이 변동할 때도 책임 경로를 신속히 재조정할 수 있습니다.
5.3. 동적 거버넌스: 표준·규제 연계
기술 변동 속도를 고려하면, 로봇 윤리 거버넌스는 고정된 법규보다 표준·가이드라인·소프트 규제(soft law)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 형태가 적합합니다. IEEE P7001~P7014 표준군은 안전·프라이버시·데이터 신뢰성 등 다양한 영역을 다루며, EU와 영국, 한국 등의 규제 당국은 이를 참고해 AI법,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시몽동적 책임 모델은 이러한 다층 규범을 점진적으로 조정하며 준안정성을 유지하는 ‘다이나믹 샌드박스’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6. 사례 분석
준안정성 기반 로봇 윤리 모델이 실제 현장에 적용되는 방식을 세 가지 대표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6.1. 의료 로봇 수술 보조
로봇 수술 플랫폼은 고정밀 기계 팔, 고해상도 비전 시스템, 실시간 진동 보정 알고리즘으로 구성됩니다. 수술 중 조직 탄성이 예상보다 크면 로봇은 실시간으로 절개 경로를 수정합니다. 이는 하드웨어 토크 센서, 머신러닝 기반 조직 식별 모델, 외과의사의 제스처 인터페이스가 형성한 개체화 장에서 발생합니다. 준안정성이 깨질 위험은 혈압 급변, 네트워크 지연, 기계팔 과열 같은 이벤트로부터 시작됩니다. 로봇 윤리 프로토콜은 이러한 위험 신호를 계량화해 임계치 도달 시 자동으로 ‘수동 모드’로 전환하도록 설계합니다. 발화 책임은 제조사·병원 공학팀·외과의사가 분담하고, 해석 책임은 학회·보험사·환자 권리 단체가 공유함으로써, 다층적 책임 링크가 구성됩니다.
6.2. 자율주행 배달 로봇
도심 보도에서 운영되는 배달 로봇은 기상·보행자 밀집도·도로 공사 정보에 따라 실시간 경로를 최적화합니다. 배달 시간 단축을 위해 로봇 간 메시 네트워크가 형성될 경우, 준안정성은 집단 수준에서 관리되어야 합니다. 예컨대 특정 구간에서 네트워크 패킷 손실률이 급증하면, 로봇 윤리 시스템은 속도 제한, 우회 경로, 원격 관제 개입 지침을 즉시 적용해야 합니다. 로봇 윤리 법규는 지자체, 배달 플랫폼, 통신 사업자, 보행자 안전 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데이터를 통합해, ‘관계망 중심 책임’ 모델을 운영합니다.
6.3. 휴머노이드 돌봄 로봇
실버 케어 현장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은 간단한 일상 대화, 복약 알림, 낙상 감지, 감정 분석 기반 위로 대화를 제공합니다. 집 안에서 로봇은 사용자의 습관을 학습하면서 고유한 개체화 경로를 걷습니다. 준안정성이 깨지는 주요 원인은 음성 인식 오류, 프라이버시 민감 데이터 노출, 정서적 의존 심화 등입니다. 로봇 윤리 설계는 ‘감정 민감도 임계치’를 정의해 로봇이 특정 수준 이상의 감정 패턴에 개입할 때, 인간 돌봄 인력이 확인하는 절차를 두어야 합니다. 또한, 업데이트 설치 시 사용자에게 변동된 감정 분석 알고리즘 정보와 데이터 처리 방식을 인지하기 쉬운 언어로 제공해야 합니다.
7. 쟁점과 향후 과제
준안정성에 기반한 로봇 윤리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연구·정책적 쟁점을 안고 있습니다.
7.1. 지속적 개체화와 수정
로봇 윤리 규범이 살아 있는 규범이 되기 위해서는, 로봇이 겪는 지속적 개체화를 법적·기술적 절차와 동기화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버전이 바뀔 때마다 AI Act 적합성 평가를 전체 재실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대신 ‘주요 기능 변경’이나 ‘데이터 소스 변경’같이 준안정성 측면에서 임계치를 정의하고, 해당 범주에 해당할 때만 부분적 재평가를 수행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7.2. AI Act·IEEE 표준과의 접점
EU AI Act와 IEEE P7000 시리즈는 모두 위험 기반 접근을 채택합니다. 그러나 시몽동의 준안정성 모델은 위험을 ‘현재 상태’가 아닌 ‘근접한 미래의 변동성’으로 읽습니다. 이 차이를 반영하려면, 규제 영향 평가서에 ‘잠재 에너지 지표’를 포함하고, 준안정성 예측 시뮬레이션을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히, 국경을 초월해 운영되는 클라우드 로봇 시스템에서는 지역별 규범 차이가 준안정성 변수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국제 표준 간 교차 인증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7.3. 윤리적 설계 교육의 개선
시몽동적 관점은 엔지니어에게 시스템 사고를 요구합니다. 이를 위해 공학 교육 과정에 ‘개체화 실험실’을 도입해, 학생들이 로봇 윤리 이슈를 하드웨어 발열, 데이터 드리프트, 사용자 경험 디자인과 연결해 분석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사회과학·철학·법학 전공자와 협업하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을 통해, 로봇 윤리 규범이 실제 제품 개발 과정에서 구현되는 방법을 체득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8. 결론
시몽동의 개체화 이론과 준안정성 개념을 적용하면, 로봇 윤리는 더 이상 ‘로봇에게 인간과 같은 권리를 부여할 것인가’라는 이분법에 머물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로봇, 인간, 환경이 생성하는 역동적 관계망의 변동성과 잠재 에너지를 계량화해, 도덕적 지위와 책임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습니다. 본 글은 자율로봇을 기술적 개체로 해석하고, 준안정성에 기반한 도덕적 개입 시점, 동적 책임 배분, 다층 거버넌스 설계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앞으로 로봇 윤리 연구는 공학적 실험, 시뮬레이션, 현장 사례 연구를 통해 준안정성 지표를 구체화하고, 법·정책 체계와의 연계를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로봇 윤리가 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공진화를 지원하는 제도적 인프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참고 사이트
- IEEE Global Initiative on Ethics of Autonomous and Intelligent Systems: 인공지능 및 로봇 관련 국제 윤리 원칙과 표준 초안을 제공하는 공식 사이트
- European Union Artificial Intelligence Act: EU 인공지능법 공식 원문 및 최신 입법 동향 확인 가능
- ETRI Electronics and Telecommunications Trends: ETRI의 인공지능·로봇 기술 및 윤리 동향 분석 자료
참고 연구
- Simondon, G. (2017). On the Mode of Existence of Technical Objects (C. Malaspina & J. Rogove, Tran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Original work published 1958)
- Gunkel, D. J. (2018). Robot Rights. MIT Press.
- Coeckelbergh, M. (2020). AI Ethics. MIT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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