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와 실존주의

실존주의

현대사회는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개인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에도 큰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둘러싼 복잡한 구조와 빠르게 움직이는 기술 및 경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고민하게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은 중요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질문—“나는 누구이며, 왜 여기 있는가?”—을 던져 왔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가장 도전적이고 직설적인 답변을 제시하는 흐름 중 하나가 바로 실존주의입니다.

실존주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에 걸쳐 점차 체계화된 철학 사조로, 주로 개인의 자유, 책임, 그리고 실존적 불안에 대한 성찰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전통적인 형이상학이나 인식론보다는 인간의 주체성, 구체적 경험, 그리고 선택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현대인의 삶에 대한 통찰을 제시합니다. 개인이 경험하는 불안, 고독, 그리고 삶의 무의미함에 대한 극복 과정을 철학적·문학적으로 표현해 낸 인물로는 키르케고르, 사르트르, 하이데거, 니체, 카뮈 등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현대사회는 전 지구적 연결망, 디지털 혁신, 인공지능 등의 발달로 인해 과거 어느 시대보다 복합적이고 불확실한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선택에 대한 고민을 더욱 깊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존주의가 던지는 물음, 즉 “개인이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책임지며,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라는 철학적 고찰은 여전히 높은 시사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들과 실존주의의 사유방식을 심층적으로 살펴보고, 그것이 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하는지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1. 실존주의의 역사적 배경

실존주의가 본격적으로 철학계와 문학계에 영향을 미치기 전부터, 인간 존재의 본질적 고민은 다양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철학 사조가 뚜렷한 형태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였습니다. 당대 유럽은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 그리고 기존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흔들림으로 인해, 개인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성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키르케고르의 신앙과 주체성에 관한 고찰은, 개인이 자신의 내면에서 느끼는 불안과 고독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후기 철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표적으로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함으로써 기존 도덕 체계의 기반을 허물고, 인간이 어떻게 자기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창조해낼 수 있는지를 역설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실존주의가 강조하는 ‘주체적 선택’과 맞닿아 있으며, 전통적 권위나 절대적 진리를 파괴하는 급진적 입장을 통해 인간 존재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을 재조명하였습니다. 이어서 하이데거나 사르트르 같은 20세기 초중반 철학자들은, 현존재(Dasein)나 자각적 실존 등을 중심으로 ‘인간이 어떻게 세계 속에서 존재하며, 그 존재 방식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였습니다.

이렇듯 실존주의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정치·사회적 격변기에 발맞추어 ‘개인의 실존’을 중심 주제로 내세웠습니다. 세계대전과 식민지 해체, 그리고 전통적 가치관이 와해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재정의할 필요를 절감했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실존주의가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시대 상황이 있었기에 인간의 구체적 상황과 내면적 갈등,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자유와 책임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조명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실존주의는 시대적 위기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발견하고 창조하는 존재’라는 통찰을 제공함으로써, 학문적 영역을 넘어 문학과 예술 전반에도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지식인들은 계몽주의 이후 확고해 보이던 이성 중심의 세계관이, 실제 인간의 구체적 경험과 괴리가 생긴다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 삶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 존재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회의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존주의는 단순히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합리적 명제를 넘어서, ‘나는 느끼고 선택하며, 그 결과에 책임지는 주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이처럼 근대성과 전통 사이에서 갈등하던 시기에, 실존주의는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대한 강력한 문제제기가 되었습니다.

2. 현대사회의 문제와 실존주의적 시각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의 발달을 통해 시공간의 제약이 크게 줄어든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정보의 홍수는 한편으로는 풍부한 지식과 소통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피상적 자극에 치중하게 만들어 자기성찰의 시간을 점차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더불어 경제적·정치적 불안정, 기후 변화,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동 등 복합적 요인이 결합하여, 개인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과 사회적 스트레스는 이전 세대보다 더욱 높은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실존주의는 인간이 처한 불안과 고독을 단순히 개인적 결함이나 약점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기인하는 본질적 조건으로 인식합니다. 즉,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한계 상황 속에서 각 개인은 의사결정과 자기 확립의 과정을 거치며, 그에 따른 결과를 온전히 책임져야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실존주의적 시각은 현대사회에서 흔히 목격되는 ‘집단의 흐름에 휩쓸리는 삶’이나 ‘주어진 틀에 순응하는 태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예를 들어, SNS에서의 과도한 자기 노출이나 타인의 인정에 대한 욕구는, 현대인이 자신의 ‘진짜 욕망’을 확인하기보다 주변의 기준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비롯될 때가 많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주체적 삶을 방해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를 회피하거나 타인 혹은 사회 구조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는 더욱 큰 공허감이나 소외감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결과적으로,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다층적인 문제들은 실존주의의 근본적인 물음—‘나는 과연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을 다시금 상기시키게 만듭니다.

현대사회가 지닌 또 다른 특징은 글로벌 경제체제 속에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비교되는 개인들의 모습입니다. 학교·직장·가정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역할과 성과 압박은, 때로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극단적 스트레스 상황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환경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여해야 할 존재의 의미를 외부로부터 주입받거나 대체해 버리는 위험성을 갖고 있습니다. 즉, 본인이 진정 원하는 삶의 방향을 숙고하기보다는,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과 행복의 모델을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자율적 실존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현대사회의 복합적 도전들은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고, 자유로운 선택과 책임의 과정을 제대로 수행하는지를 시험하는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이 점에서, 현대인은 고독과 불안을 무조건 회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 직시하고 수용함으로써, 더 진정성 있는 삶의 태도를 확립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이는 빠르게 변하는 외부 환경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지속적인 성장과 의미 창출을 이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됩니다.

3. 실존주의와 자유의 문제

실존주의 철학에서 자유는 단순히 ‘구속받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언제나 선택해야 하는 인간의 본질적 조건’을 가리킵니다.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이 세계 속에서 완전히 독립된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궁극적인 선택의 순간에서만큼은 타인이나 사회가 아닌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때 자유는 원치 않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과 책임을 동시에 수반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기꺼이 포기하거나 외면하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20세기 초중반에 사르트르가 제시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는 명제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고정된 본질을 지니기보다, 자신의 행위와 결정을 통해 비로소 자기를 정의하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자유로운 선택’을 단순한 특권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가능성을 열어 주는 주요한 요소이자, 동시에 무거운 도덕적·심리적 부담으로도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실존주의적 자유는 개인을 해방시키는 동시에, 현실의 조건 속에서 스스로를 더 높은 수준으로 이끄는 과제를 안겨줍니다.

현대사회에서도 개인의 자유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 자유는 주로 법적 권리나 경제적 기회라는 측면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은 이러한 제도적·외형적 자유만으로는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원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해서 언제나 자율적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깊은 자문과, 그 후에 오는 결과를 수용하려는 책임 의식입니다.

여기에 더해, 실존주의는 자유를 단지 긍정적인 요소로만 보지 않습니다. 선택의 가능성이 무한히 열려 있는 상황은 종종 인간에게 중압감과 두려움을 안겨주며, 이를 ‘실존적 공포’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사실, 무한히 열린 선택지 앞에서 우리는 ‘만약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할까’라는 내면적 공포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존주의 관점에서는 이 또한 인간이 온전히 수용해야 할 실존적 조건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불확실성과 불안을 직면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삶에 더욱 책임을 지고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실존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맞닥뜨린 상황을 정확히 바라보고, 그 속에서 능동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촉구하는 근본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가 제공하는 수많은 기회와 정보는 그 자체로 풍요로움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개인이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태도가 없다면 외부의 압력이나 유행에 휩쓸려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실존주의적 자유는 제도적 권리보다 더욱 근원적인 삶의 태도를 가리키며, 우리 각자가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고 완성해 나가는 과정 전반을 지배하는 핵심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실존주의의 주체적 책임

실존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주체적 책임’입니다. 인간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그 선택의 결과까지 온전히 감당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사르트르는 이를 가리켜 ‘인간은 자유의 형벌을 받는다’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는 결코 부정적인 함의만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이 속한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며, 궁극적으로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를 능동적으로 고민하도록 자극한다는 점에서, 주체적 책임은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이끌어냅니다.

예컨대, 오늘날 직장인들은 빠르게 변하는 업무 환경과 경쟁적 조직 문화 속에서 목표 달성 압박을 크게 받습니다. 이때 실존주의가 제시하는 책임 의식은, 단순히 결과를 잘 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선택이 일으키는 파장을 성찰하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윤리적·사회적 의미가 생산되는지를 끊임없이 살피라는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이런 책임 의식이 결여된다면, 개인의 삶은 표면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내면적 공허감이나 방향 상실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정이나 친구 관계 등 친밀한 인간관계에서도 책임의 문제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동합니다. 갈등이나 상호 이해 부족이 발생했을 때, 무조건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는 결국 문제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성장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낳기 쉽습니다. 실존주의는 관계 속에서도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무엇을 선택했는가’를 숙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나아가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깊이를 확대하여,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특히 사회적 차원에서도 주체적 책임은 중요한 함의를 가집니다. 대중매체나 정부 정책, 혹은 기업 마케팅 등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선택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효과를 종종 간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인간은 결코 수동적 소비자나 관찰자로만 머무를 수 없습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결과—예컨대 환경 보호, 사회 정의, 문화 창달 등에 관한 영향—는 결국 개인이 회피할 수 없는 책임으로 귀결됩니다. 이를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단순한 제도적 안정이나 경제적 성장이 아니라, 개인의 의미 찾기와 공동체적 가치 창출이라는 더 심층적인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5. 실존주의의 심리학적 측면

실존주의가 주로 철학적 범주에서 논의되지만, 그 영향은 심리학 영역에서도 깊이 드러납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인본주의 심리학과 실존 심리학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잠재력을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적 틀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들은 인간이 단순히 욕구 충족이나 외부 자극에 의해 좌우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실존적 조건과 마주하며 의미를 창출하는 주체임을 강조합니다.

가령,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로고테라피(logotherapy)는 인간이 ‘의미를 찾는 존재’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삶의 목적을 발견해내는 과정이 인간의 정신적 건강과 직결된다는 것은, 실존주의의 핵심 주장과 맥을 같이합니다. 이 관점에서 우울감, 불안, 소외감 등은 개인이 자아 정체성이나 삶의 목적을 분명히 설정하지 못했을 때 더욱 심화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따라서 심리치료 분야에서도 실존주의적 접근은, 내담자가 자신의 선택과 책임을 자각하고, 그로부터 삶의 구체적 의미를 재발견하도록 돕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또한 실존주의는 자존감이나 자기 효능감 같은 심리학적 개념을 재조명합니다. 전통적으로 심리학은 개인의 성격 특성과 환경 요인 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해 왔지만, 실존주의는 그 모든 요소를 종합하는 ‘개인의 주체적 자각’을 더욱 중시합니다. 예컨대, 특정 상황에서 개인이 느끼는 무력감이나 분노는, 단순히 성격적 결함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음에도, 책임을 회피하거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이처럼 실존주의는 인간 내면의 심층 구조를 바라보는 틀을 제시함으로써, 심리학 연구에 큰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불안은 단순한 신경증적 상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갖는 불확실성과 무게감에서 기인한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이러한 통찰은 전통적 정신분석이나 행동주의 접근에서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해 줍니다. 개인이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찾아나가려는 결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심리적 치유와 성장의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결국, 실존주의의 심리학적 시각은 ‘내면의 병리적 상태’를 단순히 제거하거나 억제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인간이 자신의 실존적 조건을 재인식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징후로도 이해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삶의 목적을 다시 설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임상 및 상담 분야에서도 점점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울증이나 공황 장애처럼 고통스러운 증상이 나타날 때, 그것을 단순히 마취하듯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왜 내가 이 상황에서 이러한 고통을 경험하는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제기함으로써, 내담자가 자기 자신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길을 모색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6. 과학 기술 시대에서의 실존주의

오늘날 우리는 과학과 기술의 놀라운 발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공학 등은 이미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 속도는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간의 역할과 정체성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이며, 기계와 지능의 발전이 가져올 새로운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까요?

실존주의는 이 같은 질문에 대해 단순히 기술적 진보를 배척하자는 입장을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술이 제공하는 편의와 효율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인간의 주체성이나 자유로운 결단을 잠식할 위험성을 경계합니다. 예를 들어,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추천 시스템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개인은 자신의 기호나 욕구를 스스로 파악하기보다 ‘제시된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수동적 태도를 취하기 쉽습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자기 존재에 대한 자각과 의미 부여 과정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첨단 의료 기술이나 생명 공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생명의 연장뿐 아니라 유전자 편집을 통한 특성 조절 등의 미래 시나리오도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이때 실존주의적 관점에서는 ‘우리는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다양한 문제—출생, 질병, 죽음—가 기술적 영역에서 다뤄질 때, 우리는 기존의 윤리 체계와 가치관에 대해 재평가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결국, 과학 기술 시대에 인간은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적용할지는 단순히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자 하는가를 묻는 본질적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기술과 함께하는 삶은 우리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열어주지만, 동시에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온전히 책임져야 할 의무 또한 가중됩니다. 이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면, 기술은 오히려 우리를 객체화하고, 기계적 프로세스 속에 편입시키는 또 다른 형태의 ‘구속’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실존주의적 시각이 제시하는 ‘스스로 사고하고 선택하는 주체’라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더욱 강조해야 합니다. 미래의 기술이 어떠한 형태로 진화하더라도,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자유를 실천하며 책임을 짊어지는 존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실존주의가 줄곧 주장해 온 ‘인간이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창조해 나갈 것인가’라는 물음을 한층 더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과학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선택 범위를 확장한다 하더라도, 실존주의는 궁극적으로 ‘인간 자신이 모든 결정에 관여하고 결과를 책임진다’는 원칙이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7. 실존주의 비평: 사회 제도 및 문화

실존주의가 개인의 주체성, 자유, 책임을 강조하지만, 이는 결코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배제하는 철학이 아닙니다. 오히려 실존주의자들은 사회 제도나 문화 규범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태도가 개인의 진정한 자유와 자아 발견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전통적 권위나 기존 관습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클수록, 그 속에서 형성되는 동일시와 타성은 인간이 자기 고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에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소비 문화가 극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특정 브랜드나 라이프스타일을 추종함으로써 일시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존주의의 관점에서는 이 같은 소비 행태가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의 모습인지, 혹은 단순히 사회가 부여한 역할에 순응하고 있는 것인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 지점에서 개인은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과 자기 내면에서 갈망하는 가치 사이에서 갈등을 경험할 수 있는데, 이는 곧 주체적 선택의 근본적 문제로 이어집니다.

또 다른 예시로, 교육 제도나 종교적 관습은 사회 통합과 문화 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자발적 탐색과 비판적 사고를 제한하기도 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특히 이러한 제도적 권위가 개인의 삶 전반을 대신 결정하거나 ‘정답’을 강요할 때, 오히려 인간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억압한다고 비판해 왔습니다. 따라서 제도나 문화가 주는 안정성과 편의성은 분명 존중하되, 그것이 개인의 실존을 규정하는 절대적 규범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실존주의 비평의 핵심은 ‘제도와 문화의 영향력’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개인이 자기 삶을 어떻게 해석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는 정치나 경제, 예술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유효한 관점입니다. 개인은 늘 사회 시스템 속에서 활동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고, 어떤 가치를 우선시할지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몫이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이념이나 관습, 혹은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좇는 대신, 자기 주체성을 유지하며 문화적 다양성이나 창의성을 꽃피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실존주의는 현대사회의 거대한 구조와 제도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개인이 스스로를 상실하지 않고 더욱 풍요로운 의미를 창출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궁극적으로, 사회 제도와 문화는 개인의 실존적 결단을 보조하거나 방해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으며, 그 경계는 개인의 비판적 사고와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따라서 사회 발전을 논의할 때, ‘인간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실존주의 비평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8. 실존주의가 주는 미래적 전망

현대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빈부 격차나 정치적 갈등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의 발달, 우주 탐사, 기후 위기 등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간의 존재 양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도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대 담론 속에서, 실존주의는 개인의 삶이 결코 거시적 구조로부터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의 주체적 각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미래 사회가 아무리 복잡해지고 기술적으로 발전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자기 삶을 정의하고 책임지는 주체는 인간 자신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이는 교육, 직업, 문화,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큰 함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컨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국가와 기업은 끊임없이 인재를 양성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때 실존주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뿐 아니라, ‘왜 그것을 해야 하는가?’라는 좀 더 근본적인 물음을 제시함으로써, 미래 전략에 윤리적·철학적 고려를 포함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디지털 미디어와 글로벌 네트워크가 확장되면서, 우리는 먼 나라의 문제나 이질적 문화를 더 가깝게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은 상호 이해와 협력을 촉진하는 동시에, 개인의 정체성 혼란이나 문화적 갈등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실존주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변화는 ‘나’와 ‘타인’에 대한 깊은 인식과 책임 의식을 요구합니다. 결국, 미래에 어떤 사회적·기술적 발전이 나타나더라도,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삶의 본질적 의미를 추구하려는 노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실존주의가 제시하는 미래적 전망은 인간이 스스로를 단순히 시대적 흐름에 휩쓸리는 존재로 보지 않고, 자신의 내면적 욕구와 책임감을 자각하며 삶을 영위하는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끊임없이 생겨나는 문제들—환경 파괴, 사회적 양극화,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질병 등—은 개인이 혼자 해결하기에는 너무 거대해 보이지만, 실존주의는 오히려 개인이 바로 그 문제의식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절망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현재 주어진 환경 속에서 스스로 의미 있는 행동을 선택하고 실천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 모두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존주의가 미래 사회에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인간의 존엄성과 주체성이 결코 기술이나 제도적 권위에 의해 대체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삶은 과학 진보에 의해 상당 부분 편리해질 수 있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무한한 지식과 자원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각 개인이 자유로운 결단을 내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실존적 선택’의 순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실존주의는 현대인에게 지속적인 성찰과 의미 추구의 길을 제시함으로써, 미래를 향한 긍정적 전망을 열어 갈 수 있는 지적 토대를 마련해 줍니다.

참고 사이트

참고 연구

  • Kierkegaard, S. (1849). The Sickness unto Death. Princeton University Press.
  • Sartre, J.-P. (1943). Being and Nothingness. Washington Square Press.
  • Frankl, V. E. (1963). Man’s Search for Meaning. Beacon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