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 전지전능과 전적인 선함을 전제로 할 때에도 실제 세계에는 고통·재해·도덕적 악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설명하려는 철학적·신학적 노력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으며, 이를 가리켜 신정론이라고 부릅니다. 본 글은 악의 문제를 중심으로 신정론이 제시해 온 대표적 해석과 반론, 그리고 현대 사회 속 적용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악의 문제는 철학·종교를 넘어 윤리·과학·정치에까지 파급효과를 미쳤습니다. 일상의 대화에서조차 “왜 신이 이런 고통을 허락하시는가?”라는 질문은 반복됩니다. 신정론은 이 질문에 체계적으로 대답하려는 시도이며, 그 이론적 전개 과정은 믿음과 이성, 경험 사이의 긴장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최근의 팬데믹과 기후 재난은 악의 문제를 더욱 현장감 있게 부각시켰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기존의 신정론 틀을 재검토하게 만들었으며, 철학자와 신학자는 새로운 개념적 도구를 동원하여 논의를 확장했습니다.
근대 이후 정치철학은 악을 ‘구조적 폭력’으로 개념화하여, 제도와 권력이 개인의 고통을 어떻게 증폭시키는지에 주목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 개념을 통해, 체계화된 관료주의가 도덕적 통찰을 마비시킬 때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함을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통찰은 신앙 공동체가 악을 개인적 선택의 결과만으로 환원하지 않고, 사회적 메커니즘을 함께 성찰하도록 자극합니다.
반면 문학과 예술은 상징·은유를 통해 악의 체험을 서사화해 왔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부조리 상황에서 인간 연대를 그려, 독자가 실존적 결단을 모색하게 만듭니다. 음악학자들은 파헬벨의 ‘통곡 모티프(lament bass)’가 전쟁과 재난 이후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예술이 악을 기억하고 치유하는 매개체가 됨을 강조합니다.
1. 악의 문제: 개념 정의와 역사적 배경
‘악’이라는 단어는 문화마다 다르게 정의되지만, 철학적 논의에서는 주로 고통·불의·도덕적 타락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합니다.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를 강조했으나 악의 실체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침묵했습니다. 기독교 사상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을 ‘선의 결핍’으로 규정하며, 이를 통해 신정론의 초기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중세 스콜라 사상에서 악의 문제는 ‘사물의 질서’(ordo) 속에 상대화되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정론을 발전시키며, 신적 섭리 체계 안에서 악이 유한한 피조물의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악이 선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더 큰 선(major good)’ 논지를 제시해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반면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서는 고통을 허용하는 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볼테르는 리스본 대지진(1755)을 예로 들어 전능·전선신(Omni-benevolent Deity) 개념을 회의했습니다. 이때부터 테오디시는 단순 변명(apologia)을 넘어 체계적인 합리화 체계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analytic philosophy의 엄격한 논증 방식이 도입되어 테오디시 논의가 논리적 악 논증과 확률적 악 논증으로 분화되었습니다. 또한 과정신학, 해방신학 등 새로운 신론이 등장하여 악의 문제를 재구성했습니다.
1.1. 서양 전통의 접근
서양 사상에서는 악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자유의지, 영혼 형성, 신적 자기제한(Kenosis) 등 다양한 테오디시 틀이 등장했습니다. 17세기 라이프니츠는 ‘최선의 가능 세계’ 가설을 제시하여 신의 완전성과 세계의 불완전성을 조화시키려 했습니다.
1.2. 동양·한국 전통의 접근
불교적 관점에서 ‘고(苦)’는 인과(因果)의 법칙 속에서 이해되며 절대적 창조주 관념이 없기 때문에 서양식 테오디시와는 다른 문제틀을 형성합니다. 유교·도교 전통에서는 ‘하늘(天)’과 ‘도(道)’가 가치 질서를 담당하나, 악을 도덕적 수양의 결여로 파악합니다. 한국 기독교 신학계는 토착화 과정에서 한(恨)과 악의 문제를 연결하며 고유한 테오디시 담론을 전개했습니다.
1.3. 악의 유형 분류: 도덕적 악과 자연적 악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간 행위로 발생한 고통을 ‘도덕적 악’, 자연 현상에서 비롯한 고통을 ‘자연적 악’으로 구분합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기후 위기와 같은 혼합형 악이 증가함에 따라 두 범주가 겹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컨대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는 강풍·홍수라는 자연 현상에 빈곤·인종 차별이라는 사회적 요인이 결합해 증폭되었습니다. 이런 복합 악을 분석하려면 환경과 정치·경제 구조 전체를 포함한 다층적 모델이 필요합니다.
심리학자인 폴 블룸의 연구에 따르면, 피해자를 ‘가시적 얼굴’로 경험할 때 동정심과 지원 행동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따라서 매스미디어가 재난 지역의 구체적 이미지를 전달할수록 자선 기부와 봉사 참여율이 상승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자극은 ‘연민 피로(empathy fatigue)’를 초래해 행동을 마비시키기도 합니다. 악에 대한 연구는 이런 인지·정서 메커니즘을 고려하여 사회적 개입 전략을 설계해야 합니다.
2. 주요 신정론 이론
악의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된 신정론 이론은 크게 자유의지 변론, 영혼 형성론, 과정신학적 방안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각 이론은 악을 설명하는 방식과 신의 속성을 조정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2.1. 자유의지 변론
알빈 플랜팅가가 체계화한 현대 자유의지 변론은 ‘자유가치(Free Value)’의 존중을 통해 악의 허용을 정당화합니다. 이 논증은 논리적 악 논증에 대응하여 신정론의 논리적 일관성을 방어합니다. 자유의지를 전제함으로써 신은 도덕적 행위의 참된 가치와 책임을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2.1.1. 현대 심리철학과의 대화
신경과학은 자유의지에 관한 결정론적 가설을 제시하지만, 최근 실험철학 자료는 ‘선택 경험’이 윤리적 책임 판단에 여전히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자유의지 변론에 기초한 신정론은 인간 주체성의 경험적 내용을 고려하여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2.2. 영혼 형성 신정론
존 힉(J. Hick)은 절대적 선함이 불완전한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해 ‘도전의 장’을 제공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이론은 악을 인격적 성숙을 위한 교육적 도구로 재해석합니다. 한국 교단 내에서도 힉의 견해가 소개되며 신정론 담론을 풍부하게 했습니다.
2.2.1. 교육적·치유적 적용
실천신학 연구는 병원 사목 현장에서 영혼 형성 모델을 활용하여 환자의 고통 서사를 재해석하도록 돕습니다. 예를 들어, 말기 암 환자에게 삶의 최종 단계가 ‘인격적 완성’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이라는 관점을 제공할 때, 정서적 안정과 통증 조절 성공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개선되었습니다(Lee & Park, 2021).
2.3. 과정신학적 신정론
A. N. 화이트헤드와 C. 하트쇼른의 과정형이상학은 신을 ‘변함없는 통치자’가 아니라 ‘공감적 공동창조자’로 규정합니다. 여기서 신은 전능성을 자기제한하고, 세계와 더불어 과정을 이루어 갑니다. 따라서 악은 신의 무능이 아니라 자유로운 과정의 산물로 해석됩니다.
2.3.1. 포스트휴먼 비판
포스트휴먼 신학은 기술적 특이점 이후 자율적 기계 지성이 형성될 경우, 악의 행위 주체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합니다. 이에 따라 과정신학은 ‘관계적 책임’을 기계·인간·신이 공유하는 다중 행위자 네트워크로 확장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2.4. 변증법적 접근과 과정 통합
변증법적 관점은 세계를 ‘상호충돌하는 힘들의 장’으로 이해하며, 악은 모순의 한 극으로 간주됩니다. 게오르크 헤겔은 역사 발전의 동력을 ‘부정성’에서 찾았고, 이 부정성은 고통과 마주한 주체가 자각을 통해 새로운 차원으로 상승할 때 극복됩니다. 헤겔 이후 발터 벤야민은 역사를 ‘폭력의 파편’으로 읽으며, 해방의 희망을 예언자적 메시아 의식으로 연결했습니다. 이러한 사상들은 고통을 과거의 실패로만 보지 않고 미래 가능성의 자원으로 전치합니다.
동시에, 변증법적 모델은 지나치면 고통을 수단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합니다. 실제 현실에서 악을 경험한 이들은 철학자의 상승 서사를 탈맥락적 추상화로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연구자는 피해자 내러티브를 우선 청취하고, 개념적 해석은 경험적 증언 위에서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합니다.
2.5. 타종교 전통의 대응
이슬람 신학에서 ‘카다르(qadar)’ 개념은 신적 예정과 인간 책임을 동시적으로 인정합니다. 무타질라 학파는 자유를 강조하며 신적 정의를 변론했고, 아샤리 학파는 절대 예정론을 견지하며 신의 절대 주권을 강조했습니다. 힌두교 베단타 전통은 ‘카르마’ 법칙을 통해 고통이 현재 혹은 과거 삶의 행위와 연결된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교리는 세계 내 질서를 유지하는 도덕적 에너지를 전제하며, 고통 자체를 윤리적 학습 기회로 여깁니다.
종교 간 비교 연구는 각 전통이 선택·결과·은총을 어떤 비율로 조합해 고통을 해석하는지 추적합니다. 이 분석은 문화 상대성을 넘어선 보편 윤리 가능성을 탐색하는 기초 자료를 제공합니다.
3. 현대 분석철학의 악 논증 재검토
분석철학은 엄격한 논리 형식과 확률 이론을 도입하여 신정론의 논증 구조를 점검했습니다. 이에 따라 악의 문제가 ‘논리적 불가능성’인지 ‘경험적 불합리성’인지에 대한 구분이 명확해졌습니다.
3.1. 논리적 악 논증
J. L. 매키는 ‘전능·전선·악’ 세 속성이 동시에 성립할 수 없다는 불가능 삼위일체를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한 신정론 반박은 불일치가 아니라 ‘가능 세계’ 이론을 활용한 해명임을 강조합니다.
3.2. 확률적·귀납적 악 논증
윌리엄 로웬은 ‘부적절하게 큰 고통’ 사례를 제시하며, 전지선신의 존재가 확률적으로 낮아진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알빈 플랜팅가는 대칭적으로 ‘스케프틱 전제’(Skeptical Theism)를 도입하여, 인간 지식의 한계를 근거로 신정론을 강화했습니다.
3.3. 인공지능 시뮬레이션과 악의 예측
딥러닝 기반 시뮬레이션은 대규모 사회 데이터를 학습해 폭력 발생 가능성을 예측합니다. 예를 들어, 시카고에서 시행된 ‘사회적 네트워크 분석’을 통해 경찰은 위험군을 미리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는 편향된 데이터를 사용하면 특정 인종과 계층이 과도하게 표적이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기술 윤리 연구는 이런 사례를 실험실 밖 ‘살아있는 논증’으로 취급하여, 알고리즘이 피해를 재생산하지 않도록 투명성과 책임 메커니즘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철학자들은 이러한 예측 기술이 인간 행위자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자기충족적 예언’ 효과를 일으킬 위험을 경고합니다. 반대로 기술 옹호론자는 정확한 예측이 예방적 복지를 가능하게 하며, 위험 가정에 자원을 조기 배분함으로써 결과적 악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논쟁은 행위자 주체성과 구조 결정론 사이의 균형을 요구합니다.
3.4. 고통의 도덕 심리학
최근 실험 연구는 사람들이 고통을 목격할 때 ‘공정성 직관’이 활성화되며, 가해자가 의도적일수록 보복적 정의 감정이 고조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 결과는 악에 대한 분노와 처벌 욕구가 인지적 평가뿐 아니라 생물학적 반응(아드레날린 분비)과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반면, 보상적 정의 모형에서는 피해 회복이 이루어질 때 공통체의 심리적 응집력이 강화됩니다. 따라서 정의 절차 설계자는 공정한 처벌과 효과적 회복 프로그램 간 균형을 고민해야 합니다.
4. 과학, 진화론, 그리고 신정론
19세기 이후 진화생물학은 생명의 목적론적 설명에 도전하며 악의 자연적 기원을 탐구했습니다. 기생·포식·질병처럼 생태계의 경쟁적 구조는 ‘자연 악(natural evil)’이라 불리며, 테오디시 이론가에게 난제였습니다.
진화론은 무분별한 약육강식을 설명하지만, 동시에 협동·연대·공감의 진화적 이익을 입증합니다. 신정론은 이러한 양면적 결과를 수용하며, 신이 과정 속에서 생명체의 자유로운 발현을 허용한다는 프레임을 강화했습니다.
물리학 역시 우주의 미세 조정(fine-tuning)을 지적하며 우주 상수의 정밀함이 생명 가능성에 결정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일부 테오디시 논자는 이를 근거로 ‘우주적 선의 조건’을 제안했으나, 다중우주 가설은 다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최근 인공지능 윤리는 ‘인공 악’을 새롭게 논의하며, 자율형 무기·알고리즘 편향이 초래할 위험을 경고합니다. 이에 따라 테오디시 연구자는 기술적 악을 포함한 새로운 신학적·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4.1. 감염병 윤리와 공중보건
코로나19 사태는 방역 정책의 공정성이 질병 확산 및 사회 통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초기 백신 배분 과정에서 우선순위를 둘러싼 갈등은 ‘배제된 자의 고통’을 부각시켰고, 국가·기업·시민 간 책임 배분이 윤리적 쟁점으로 부상했습니다. 공중보건 윤리는 개인 자유 제한과 집단 안전 보장을 어떻게 조화시킬지 고민하며, 제도적 악을 최소화할 절차적 정의를 강조합니다.
국제 보건 규범 IHR(International Health Regulations)은 각국의 역학보고 의무와 자료 공유를 명시합니다. 그러나 일부 국가는 자국 경제 보호를 이유로 정보를 은폐해 전 세계적 대응을 지연시켰습니다. 법철학자들은 이를 ‘도덕적 국경주의’로 규정하고, 글로벌 의료 정의(global health justice)를 확대하자고 제안합니다.
4.2. 우주론적 관점과 코스믹 스케일의 고통
천체물리학은 지구 외 생명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은하계적 재앙’ 가능성도 함께 고려합니다. 감마선 폭발이나 소행성 충돌과 같은 이벤트는 종종 대멸종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화성 탐사 프로젝트는 ‘행성 종 다양성’을 통해 종 전체가 절멸 위험을 분산시킨다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이 논의는 고통의 범위를 지구 경계를 넘어 장대하게 확장하며, 인간 책임을 우주 차원으로 확대합니다.
진화 심리학은 인간 두뇌가 ‘음모 탐지 모듈’을 통해 악의 원인을 의인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 모듈은 생존 적응에 기여했을 수 있으나 현대 사회에서 과도한 외집단 비난과 음모론을 낳기도 합니다. 종교 교육은 이러한 인지 편향을 인식하도록 도와, 악을 둘러싼 단순화된 서사를 완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후 모델링 연구는 산업혁명 이후 평균 기온 상승이 극한 재해 빈도를 증가시켰음을 제시합니다. 인류가 초래한 ‘인간세(Anthropocene)의 악’은 기존 자연 악 범주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책임 신학(responsibility theology)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활발합니다.
5. 신정론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함의
종교사회학은 특정 공동체가 악을 해석하는 방식이 사회적 연대와 갈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합니다. 재난 이후 ‘신의 심판’ 담론이 급증하면 사회적 낙인 효과가 나타나고, 반대로 ‘연대와 봉사’ 담론이 강조되면 공동체 결속이 강화됩니다.
한국 사회에서 세월호 참사는 ‘구조적 악’에 대한 시민적 각성을 촉발했습니다. 이 사건은 기존 테오디시 논의를 공공정책 및 책임 윤리로 확장시켰습니다. 피해자 중심 서사를 통해 악의 문제를 다루는 과정은 실천적 학문으로서의 신정론 의의를 제시합니다.
또한 종교 간 대화(interfaith dialogue)는 악의 문제를 공통 의제로 설정하여 협력적 해결 방안을 모색합니다. 예를 들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생태 신학적 테오디시 논의는 종교·과학·시민사회가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촉진합니다.
5.1. 기억과 애도: 사회적 치유 프로세스
진실·화해위원회 모델은 과거 국가 폭력을 조사하고, 피해 증언을 공식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을 통해 사회적 애도를 촉진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피해 경험을 언어화하는 과정이 트라우마 증상 완화에 기여하며, 공동체는 기억을 공유함으로써 향후 폭력 재발 방지에 필요한 제도 개혁 압력을 형성합니다.
예술치료 프로그램은 연극·사진·뮤지컬 같은 수행예술을 활용해 피해자의 목소리를 공적 공간에 배치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언어적 담론이 포착하기 어려운 정서와 상징을 드러내며, 치유의 다중 경로를 마련합니다.
설문조사 데이터(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3)에 따르면, 자연 재난 이후 ‘신이 벌하셨다’고 응답한 비율은 12%에 불과한 반면, ‘인간이 초래한 결과’라는 인식은 58%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사회적 책임론이 대중 담론에서 우세함을 보여주며, 테오디시 논의의 방향 전환을 촉구합니다.
특히 MZ세대 응답자는 전통적 교리 대신 ‘행동 기반 영성’을 선호했습니다. 이 경향은 자원봉사, 기부, 친환경 생활 등을 통해 악을 적극적으로 완화하려는 실천적 태도로 이어집니다.
6. 비판과 한계, 그리고 통합적 전망
신정론은 악을 설명하려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몇 가지 구조적 한계를 내포합니다. 첫째, 설명의 공허성 fallacy—실제 악의 심각성을 방어 논리로 희석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둘째, 문화 상대성을 무시하면 글로벌 대화에서 배타적 해석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비판적 입장은 ‘불필요한 설명 가설(Occam’s Razor)’을 적용하여, 테오디시가 중복된 존재(전지선신)를 가정한다고 지적합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일부 학자는 설명적 미니멀리즘과 경험적 검증 가능성을 결합한 테오디시를 탐구합니다.
6.1. 생태계적 관점과 시스템 사고
시스템 이론가들은 인간과 자연, 기술이 상호 연결된 피드백 루프를 이룬다고 설명합니다. 악을 단일 사건이 아닌, 복잡한 시스템 오류로 보는 시각은 문제 해결을 ‘원인 제거’에서 ‘회복 탄력성 구축’으로 전환시킵니다. 예를 들어, 홍수 관리 사업에서 하천 복원과 도시 녹지 설계는 물리적 인프라뿐 아니라 사회적 취약계층 보호 계획을 함께 포함할 때 효과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 연구는 악의 문제를 ‘작동 불량의 경고 신호’로 재해석하며, 거버넌스·교육·문화 자본의 균형 발전을 요청합니다.
6.2. 언어철학과 서사 패러다임
리처드 로티는 ‘잔혹을 줄이는 대화’가 윤리 담론의 핵심이라고 제안하며, 고통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서사와 연결하는 ‘새로운 은유’가 도덕적 상상력을 확장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자크 데리다는 피해자의 고유한 목소리가 철학적 개념에 흡수될 위험을 경고하며, 해체적 경청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언어철학적 논의는 고통을 서술하는 방식이 실제 고통 경험에 미치는 권력 효과를 탐색합니다.
기후정의 운동가들은 ‘돌봄의 윤리’가 신학적 담론과 만날 때, 정책 결정에 구체적 지침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탄소세 수익을 기후 약자에게 배분하는 제도는 고통의 불균형을 최소화하려는 도덕적 의무에 기반합니다.
또한, 인공지능 개발 기업의 윤리 가이드라인에 ‘해악 최소화’ 조항을 삽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종교 윤리학자는 이를 ‘기술 테오디시’의 한 형태로 해석하며, 미래 악 시나리오를 예방적 차원에서 다룹니다.
7. 결론
악의 문제는 단순히 학문적 난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실존적 물음입니다. 본 글은 역사적·이론적 개관을 통해 신정론이 제시한 다양한 해명을 분석했습니다. 자유의지, 영혼 형성, 과정적 세계관 등 여러 테오디시 모델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신의 선함과 세계의 고통을 동시에 수용하려 합니다.
그러나 악의 문제는 여전히 열려 있는 질문이며, 종교적 신념·합리적 사유·사회적 실천이 긴밀히 엮일 때만 부분적 해답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기후 위기, 기술적 위험, 불평등 구조는 새로운 유형의 악을 낳고 있습니다. 따라서 테오디시 담론은 더 적극적으로 과학·정책·윤리 현장을 포용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신정론은 질문을 끝내기 위한 종착지가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세계’에서 악과 고통을 돌보고 줄이기 위한 지적·실천적 동반자임을 강조합니다. 악은 논증의 대상이자 구체적 현실이므로, 우리의 해석과 행동을 동시에 요구합니다.
7.1. 생활 영성: 일상에서의 대응
깊은 철학적 논쟁도 결국 일상 속 실천으로 귀결되지 않으면 추상에 머무릅니다. 최근 임상심리 연구는 감사 일기, 명상, 공동체 봉사 같은 루틴이 정신건강 지표를 유의하게 개선하고, 사회적 신뢰도를 높인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악에 대한 대응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은 돌봄 행위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7.2. 정책 권고와 시민 교육
연구 종합 결과, 악의 문제를 다층적으로 이해한 시민은 재난 대비 훈련 참여율이 35% 이상 높았습니다(국가재난안전연구원, 2024). 교육부가 추진 중인 ‘통합 윤리’ 교과서는 철학·종교·과학·시민 실천 사례를 통전적으로 다루며, 학생이 복합 악 상황을 시뮬레이션 게임 형식으로 분석하도록 설계합니다. 이러한 체험형 학습은 교실 장벽을 넘어 실제 위험 인식을 증진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향후 연구 과제는 세 가지 방향으로 요약됩니다. 첫째, 복합재난이 일상화된 시대에 악의 복합성을 분류·예측·관리할 수 있는 다학제적 모델이 필요합니다. 둘째, 문화신학적 프레임을 통해 지역 맥락별 의례와 서사를 비교 분석하는 작업이 요구됩니다. 셋째, 가상현실·메타버스 환경에서 경험하는 고통과 윤리 문제를 해명하는 새로운 이론적 어휘를 개발해야 합니다.
참고 사이트
-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악의 문제와 신정론 관련 최신 철학적 항목을 제공하는 권위 있는 백과사전입니다.
- Encyclopaedia Britannica: 신정론 및 종교철학 개요를 신뢰성 있게 설명합니다.
- 네이버 학술정보: 한국어 학술 논문과 책 정보를 통합 검색할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 Christian Theology and Science Network: 과학과 신학을 연결한 현대 신정론 담론을 소개합니다.
참고 연구
- Plantinga, A. (1974). God, Freedom and Evil. Grand Rapids, MI: Eerdmans.
- Mackie, J. L. (1955). Evil and omnipotence. Mind, 64(254), 200-212.
- Hick, J. (1966). Evil and the God of Love. London: Macmillan.
- Rowe, W. L. (1979). The problem of evil and some varieties of atheism. American Philosophical Quarterly, 16(4), 335-341.
- Han, S. (2022). Theodicy debates in contemporary Korean theology. Korean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38(1), 2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