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감’은 인간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능력 중 하나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내 일처럼 느끼고 보듬어주려는 마음씨는,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고 사람들 간 유대감을 높여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감’이 빛나는 미덕인 동시에, 때로는 이를 수행하는 이들에게 큰 부담과 피로를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공감 피로란 바로 이런 역설적 현상을 지칭합니다. 즉, 인간이 가진 이타주의와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너무 과도해져서 정작 본인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위협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상담사, 간병인, 사회복지사처럼 늘 타인의 문제와 감정을 일상적으로 다루는 분들은 그러한 현상을 겪을 위험이 특히 높습니다.
공감 피로는 국제적으로 ‘컴패션 피로(compassion fatigue)’로 많이 불립니다. 국내외 연구를 보면, 심리치료사나 의료인, 긴급 구조대원처럼 타인에게 맞춤형 도움과 정서적 지지를 제공해야 하는 직종 종사자 중 상당수가 겪는다고 합니다. 2017년에 발표된 한 해외 논문에 따르면, 미국 간호사 중 약 60%가 공감 피로 혹은 직무 소진(burnout) 증상을 경험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으며, 특히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의료·복지·상담 분야 종사자들이 극심한 정서적 피로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공감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 되었고, 공감 자체가 피로와 소진을 야기하는 역설적 상황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공감 피로의 개념과 메커니즘을 정리하고, 왜 특히 상담사·간병인·사회복지사 등 ‘타인의 고통에 집중’하는 직업군에서 자주 목격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또한 실제 연구나 전문가 조언을 근거로, 이 현상을 예방하고 극복하는 전략을 알아보겠습니다.
1. 공감 피로의 정의와 핵심 특성
1.1. 감정전이와 부정적 정서의 누적
일반적으로 ‘공감’은 크게 인지적 공감(cognitive empathy)과 정서적 공감(emotional empathy)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인지적 공감은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능력을 말합니다. 반면 정서적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직접 체감하는 형태로, 쉽게 말해 ‘내가 너의 슬픔을 함께 느낀다’는 상태입니다.
공감 피로는 특히 정서적 공감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경우 발생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끈끈한 정서적 유대를 맺고, 때론 그들의 고통을 내가 고스란히 떠안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서적 개입이 반복되면서, 부정적 감정이 내면에 계속 축적됩니다. 이 축적된 스트레스는 상당한 심리적 부담이 되고, 제대로 해소되지 않으면 수면 장애, 만성 피로, 무기력 등 다양한 증상을 유발하게 됩니다.
1.2. 전문직 종사자의 감정노동과 위험성
특히 상담사, 간병인, 사회복지사, 의료인 등은 업무 과정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직접 마주합니다. 이들은 직업적 책임감 때문에라도 공감하는 자세를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직업적 이타주의’가 누적되면, 공감 피로로 이어질 위험이 매우 큽니다. 실제로 심리치료 분야에서는 이를 ‘대리 외상(vicarious trauma)’ 또는 ‘이차 외상성 스트레스(secondary traumatic stress)’와도 관련지어 설명합니다. 타인의 트라우마를 듣고 그 감정에 깊이 공감하다 보면, 본인도 유사한 외상을 간접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가령 매일 자살 충동을 호소하는 내담자를 만나는 상담사의 경우, ‘이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점차 본인도 우울함이나 불안을 같이 겪게 될 수 있습니다. 간병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종일 환자의 고통스러운 신체 증상과 심리적 어려움을 돌보면서, 애초에는 헌신적인 마음에서 출발했으나 서서히 희망 상실감이나 무력감이 자신 안에 스며드는 것이죠. 이러한 과정이 바로 공감 피로로 이어지는 주요 기제라 할 수 있습니다.
2. 공감 피로가 유발하는 심리·신체적 문제
2.1. 직무 소진과 혼동되는 증상
공감 피로와 ‘직무 소진(burnout)’은 종종 비슷하게 쓰이지만, 명확히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무 소진은 주로 업무 과부하나 조직적 환경 문제로 인해 동기, 에너지, 효능감이 고갈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반면 공감 피로는 타인의 감정을 과도하게 흡수하는 과정에서 기인합니다. 물론 두 현상이 동반되기도 하고, 구분이 모호한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의료 현장의 간호사는 업무적 스트레스와 감정노동(공감 노동)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직무 소진과 공감 피로가 복합적으로 발생하기 쉽습니다.
공감 피로가 심해지면 내담자나 환자에게 무감각해지는 ‘공감 회피’ 현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한 연구에서는 상담사들이 계속된 감정노동으로 인해 일종의 방어 기제를 발휘, 내담자의 상황에 무덤덤해지거나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런 반응은 오히려 내담자가 ‘아, 이 사람이 날 이해하지 못하는구나’라며 신뢰감을 잃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상담 효과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2.2. 신체 증상과의 연관성
공감 피로는 정신적 문제뿐 아니라 다양한 신체적 증상으로도 드러납니다. 대표적으로는 만성 두통, 소화 장애, 근육 긴장, 수면 장애 등이 보고됩니다. 장기간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등)이 분비되면서 면역 체계가 약화하고, 감기나 바이러스성 질환 등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또한 고도의 정서적 긴장 상태가 계속되면,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일부 통계도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공감 피로는 심리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전반적인 건강을 뒤흔드는 요인입니다.
3. 왜 좋은 마음이 독이 될까?
3.1. ‘자기희생’의 함정
공감 능력은 본래 타인과의 유대 관계를 개선하고, 사회적인 안정감과 연대 의식을 높여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타주의가 극단으로 치우치면,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를 학술적으로 ‘자기희생’ 패턴 혹은 ‘자기 방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남을 돕는 마음이 선(善)이다”라는 사회적 가치관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그 결과, 누군가를 돕다가 힘들어도 ‘내가 더 견뎌야지, 이 정도로 힘들면 안 된다’고 자기 합리화하거나, 고통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힘들고 지쳐서 무너진다면, 타인에게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태에서 제공하는 돌봄이나 상담은, 원치 않는 실수나 인간관계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커집니다. 요컨대 이타주의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에너지를 지속 가능하게 관리하지 못한다면 결국 스스로와 상대방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 ‘역설’이 발생하게 됩니다.
3.2. ‘감정 노동’의 부담
현대 사회에서 감정 노동이라는 개념은 서비스업, 의료·복지, 교육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었습니다. 공감이 필요한 만큼, 그 감정을 대면하고 적절히 표현해 내야 하는 책임도 커집니다. 예컨대, 사회복지사는 단지 행정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형편에 놓인 이들의 심리적·정서적 상태까지 보듬어줘야 합니다. 끊임없이 “어떻게 지내세요? 힘드시죠? 제가 도와드릴게요”라고 말하며,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의 우울과 절망을 흡수하게 됩니다.
한편, 간병인이나 의료인의 경우에는 하루 24시간 중 상당 부분을 환자의 비명, 고통, 어려움 속에서 보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감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요구됩니다. 동시에, 이들이 느끼는 공감 피로는 누적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이타주의가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으나, 무제한으로 자기 자원을 소모하는 식의 이타주의는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송두리째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 명백해집니다.
4. 공감 피로에 대한 연구들
4.1. 뇌과학적 근거
최근에는 뇌 영상을 활용해 공감 피로를 연구하려는 시도가 활발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정서적 공감이 활성화될 때는 뇌의 변연계(특히 편도체나 전측 대상 피질 등)가 크게 반응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스트레스 반응과 관련된 부위도 함께 자극을 받아 피로와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또한 반복적인 부정적 정서 자극이 편도체의 항진(亢進)을 일으켜, 만성 스트레스 상태로 이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명상, 마음 챙김, 인지적 거리두기 등 심리적 기법이 공감 피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제안합니다. 특히 마음 챙김(mindfulness) 훈련을 받은 의료인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공감 피로 점수가 유의미하게 낮았다는 통계 결과가 보고된 바 있습니다. 이는 공감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신중히 관찰하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4.2. 감정 소통 방식의 차이에 따른 영향
공감이 항상 피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도 비교적 쉽게 감정 조절을 하고, 다른 사람은 금방 지치고 무너집니다. 이는 개인의 성격적 특성, 스트레스 대처 전략, 사회적 지원망에 따라 차이를 보입니다. 예컨대, 외부와 감정을 잘 교류하면서도 스스로 정서적 경계를 구축할 줄 아는 사람은, 공감 피로로부터 비교적 잘 보호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또한 상담 영역에서는 “프로세스 그룹”이나 “슈퍼비전”을 통해 전문가들이 서로의 감정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심리적 지원을 해주는 시스템이 자리잡아 있습니다. 이런 구조적 지원책이 잘 마련된 조직에서는 공감 피로가 심각한 수준으로 번지기 전에 예방 조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업무량은 많고 동료나 상사의 지원체계가 충분치 않다면, 공감 피로를 스스로 방치한 채 결국 극단적 번아웃으로 이어질 위험도 높아집니다.
5. 공감 피로가 초래하는 대인관계 문제
공감 피로는 개인의 심리적·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대인관계의 질을 크게 훼손할 수 있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예는 ‘냉담함’으로 표출되는 경우입니다. 공감 피로가 깊어지면, 더 이상 타인의 감정을 수용할 여력이 없어집니다. 상담사나 간병인, 사회복지사 등이 냉소적이 되거나, 상대의 고통에 무감각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죠. 이는 내담자나 환자, 복지 수혜자들이 큰 상처를 받는 원인이 됩니다.
또한,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컨대 간병인은 종일 환자의 상태를 돌보면서 정신적으로 고갈된 상태에서 집에 돌아옵니다. 이때 가족들이 요구하는 작은 부탁조차도 ‘이제 더는 공감이나 돌봄을 해줄 수 없다’며 거부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심지어 ‘내가 이렇게 힘든데, 가족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며 억울함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대인관계가 악화하면, 개인이 가지던 사회적 지지망조차 무너져서 상황이 더욱 악화하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6. 공감 피로에 대응하는 방법
6.1. 자기 돌봄(Self-Care)의 중요성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그리고 타인의 감정을 돌보는 일을 직업적으로 수행하는 분일수록, 자기 돌봄에 대한 개념을 확실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돌봄이란 단순히 휴가를 내고 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심리적·신체적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예컨대, 상담사가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자기감정을 간단히 기록하는 저널링(journaling)을 통해 “오늘 어느 순간 내가 과도하게 이입했는가?”, “내가 느낀 피로도는 어느 정도인가?” 등을 평가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습니다.
이러한 자기 성찰 과정을 통해, 공감 피로가 어느 지점에서 심화하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유형의 내담자나 환자를 만날 때 유독 스트레스가 심해진다면, 다른 전문가와의 협업이나 슈퍼비전을 통해 그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혹은 일정 시간 이상은 휴식을 취하거나 근무 시간을 조절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면, 결국 아무리 훌륭한 공감을 하던 사람도 지쳐서 자신의 업무를 지속하기 어려워집니다.
6.2. 전문적인 슈퍼비전과 협력 체계
상담 분야에서는 슈퍼비전(supervision)이 필수적입니다. 경험이 풍부한 슈퍼바이저가 초보 상담가나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담자의 사례를 들어주고, 적절한 피드백과 지지, 조언을 해주는 과정입니다. 이는 공감 피로가 누적되지 않도록 ‘심리적 안전망’을 구축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간병이나 사회복지 분야에서도 동료 간 협의나 팀 미팅을 통해 서로의 고충을 나누고, 감정적 지지를 받는 문화가 중요합니다.
특히 의료 분야에서는 환자가 처한 상황이 극도로 심각할 때가 많기 때문에, 심리지원팀이나 전문 상담 인력을 적절히 배치해 간호사·간병인의 정서적 어려움을 돌보는 것이 필수라고 지적됩니다. 2020년대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의료진의 공감 피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을 때, 일부 병원에서는 의료진 전용 상담 프로그램을 도입해 높은 만족도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는 조직 차원의 제도적·재정적 지원 없이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6.3. 마음 챙김과 명상 기법
앞서 언급했듯, 마음 챙김(mindfulness)과 명상(meditation)은 공감 피로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되고 있습니다. 마음 챙김이란 현재 순간에 집중하면서, 떠오르는 감정을 ‘판단 없이’ 바라보는 기술입니다. 특히, “나는 지금 우울함을 느끼고 있다” 또는 “이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가슴이 답답해진다” 등,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관찰하고 인식하는 연습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타인의 감정에 압도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빠르게 자각하고, 필요하다면 잠시 호흡에 집중하거나 짧은 휴식을 가짐으로써 감정의 폭주를 차단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상담 기법이나 자기 돌봄 프로그램에서, 명상을 ‘적극적 감정 조절’ 수단으로 활용하도록 교육하기도 합니다. 물론 마음 챙김이 모든 상황에서 기적 같은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이타주의로 인한 소진을 줄이는 데 일정 부분 효과적이라는 점은 다수 연구가 지지하고 있습니다.
7. 공감 피로를 완화하는 방법
7.1. 건강한 거리두기의 기술
“적절한 심리적 거리두기”는 공감 피로의 핵심 예방 전략 중 하나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려 해도, 그것을 모두 내 문제로 삼지는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기법 중 하나가 ‘인지적 재구조화(cognitive restructuring)’입니다. 예컨대, “저 사람의 문제를 내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가 아니라, “이 문제는 분명 힘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이며, 최선을 다한 뒤 그 결과는 놓아줄 줄 알아야 한다”라고 생각의 틀을 바꾸는 방식입니다.
특히 상담가나 사회복지사에게는 윤리적·전문적 책임이 있지만, 그 책임이 무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내담자나 환자와의 상담, 간병 과정이 순탄치 않더라도, 그것이 전적으로 본인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과도한 자기 비하이자, 동시에 공감 피로를 심화하는 지름길입니다. 건강한 거리두기는 “타인을 위한 이타적 마음”과 “자신을 돌보는 마음”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7.2. 또래 혹은 멘토와의 대화
사회복지나 간병, 상담 분야에서는 종종 서로의 업무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는 ‘프로세스 그룹(Process Group)’을 운영합니다. 이 모임에서 개인이 느낀 불안, 좌절, 무력감을 솔직히 털어놓고, 다른 사람들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는 점을 확인하면 심리적 안도감이 높아집니다. 또한 경력자들이 제시하는 조언이나 노하우도 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유형의 내담자를 만날 때 지나치게 힘들어지더라” 같은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공유하면, 동료들이 “나는 이런 접근법을 써봤는데 효과가 있었다” 또는 “나도 똑같이 힘들었다”라고 응답하며 경험적 지혜를 나눕니다. 이러한 상호 지원 체계는 공감 피로가 전면화되기 전에 완충 역할을 해줄 수 있으며, 심리적 회복탄력성(resilience)도 기르는 데 기여합니다.
7.3. 다양한 취미와 대안적 에너지 충전
공감 피로를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직업적 환경에서 받는 정서적 소모를 보충해 줄 취미나 활동을 가져야 합니다. 예컨대 음악, 미술, 스포츠,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 반려동물과의 교감 등은 인간의 정서적 자원을 회복하는 훌륭한 수단입니다. 중요한 점은 이 활동들이 “타인을 돌보기 위한 공감”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즐거움과 안정을 느낄 수 있는 일’에 몰입함으로써, 개인적 행복감과 활력을 되찾는 것이 핵심 목표가 됩니다.
특히 심리학에서는 자연과의 접촉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는 다수의 연구 결과를 제시합니다. 산책, 가벼운 트레킹, 도시 근교의 숲이나 공원 방문 등이 대표적 예시입니다.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놓아두는 시간은, 공감 피로로 지친 정신적 에너지를 보충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줍니다.
8. 공감 피로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개선
8.1. 조직 차원의 지원과 문화 변화
공감 피로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조직 및 사회 제도 자체가 무리한 업무량과 불합리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개개인은 결국 지쳐 나가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미국 간호협회나 영국 상담심리학회 등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감정 노동자를 위한 안전지대(safe zone) 마련”이나 “상담가의 정기적 심리 평가” 같은 제도적 장치를 권고해 왔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점차 늘고 있지만, 아직 체계적으로 정착했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간병인, 사회복지사, 상담사 등의 전문직 단체에서는 공감 피로 예방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 내부적으로는 근무 스케줄을 조정해 휴식 시간을 충분히 주고, 감정 지원 시스템이나 슈퍼비전 기회를 마련하는 등, 사람의 ‘정신 에너지’가 소모되는 특성을 고려한 제도적 배려가 필수적입니다.
8.2. 일반 대중의 인식 제고
공감 피로는 전문가 그룹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 중 누군가를 장기 간병하는 가정 주부나, 주변 지인들의 심리적 문제를 늘 상담해 주는 ‘착한 사람’도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공감 피로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자신이 겪는 지침과 무기력이 단순히 ‘내가 나약해서 그렇다’는 자기비난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따라서 일반 대중도 공감 피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타인의 정서적 고통을 접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심각한 사연을 계속 접하면, 심리적 방어가 충분치 않은 경우에는 그 감정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그럴 때는 잠시 온라인 접속을 끊고 산책이나 운동 등으로 마음을 전환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9. 결론
공감 피로는 ‘타인을 돕겠다’는 선한 의도와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낀다’는 이상이 현실의 무거운 짐과 부딪힐 때 생기는 결과물입니다. 이 현상은 상담사, 간병인, 사회복지사 등 대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에게 특히 빈번히 나타나지만, 사실 일반인도 가까운 이들의 문제에 깊이 개입하다 보면 유사한 피로를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공감이 불필요하다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공감은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고, 개인적으로도 깊은 만족감을 안겨줍니다.
다만, 공감이 나와 타인을 동시에 지치게 하거나, 공감 행위 자체가 피로와 무기력의 원인이 되는 상황은 분명히 피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을 돌보는 심리학적 기법(마음 챙김, 인지적 재구조화 등), 조직 차원의 구조적 지원(슈퍼비전, 감정노동 완화 정책 등), 개인의 생활 패턴 조정(휴식, 취미, 사회적 관계 활용 등)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건강한 공감이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며, 동시에 타인에게 진심을 다해 귀 기울이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공감 피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 나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갖고, 지혜롭게 감정을 관리하고 대처하는 전략을 찾아야 합니다. 한층 더 성숙한 이타주의, 즉 자신과 타인을 함께 지키는 이타주의가 널리 확산하면, 따뜻하면서도 서로를 지치게 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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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counselors.or.kr: 한국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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