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헤드 과정철학과 시스템 이론의 접합

과정철학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은 “존재는 사건의 흐름”이라는 급진적인 명제를 중심축으로 삼습니다. 이 서론에서는 사건(event)의 동학을 통해 어떻게 관계와 창발이 설명되는지 간단히 개요한 뒤,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의 시스템 이론(system theory)이 제안한 자가생산(autopoiesis) 관점을 접목하여 복잡계 사회 분석 모델을 구축하려는 목적을 밝힙니다. 두 학문 전통은 각각 20세기 초·후반에 등장했지만, 현대 데이터 기반 사회 분석에 필요한 “관계적·동학적 지평”을 공유하며 상호 보완적 통찰을 제공합니다. 특히 과정철학이 사건 내부의 미시적 경험 단위를 조명한다면, 시스템 이론은 사건들이 응축되어 형성한 체계 경계를 탐구합니다. 본 글은 양자를 결합해 “사건-체계 복합 도식”을 제시하고, 온라인 플랫폼 생태계와 같은 사례를 통해 실천적 적용 가능성을 논의합니다.

1. 과정철학과 화이트헤드: 사건 중심 존재론의 태동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은 전통 형이상학에서 실체로 간주되던 객체를 “사건들의 패턴”으로 재해석합니다. 여기서 사건은 단순한 일시적 발생이 아니라, 경험·관계·가치가 얽힌 조직적인 과정입니다. 그는 이를 ‘실현(actual occasion)’이라 부르며, 모든 실재는 상호 참조하는 사건들의 네트워크로 구성됨을 강조했습니다. 물리적 우주에서 전자 한 입자도, 사회적 장에서 한 번의 대화도 모두 사건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과정철학은 “존재는 정적 상태가 아니라 영속적인 생성”이라는 관점을 체계적으로 정식화합니다. 과정철학 전통은 20세기 후반 화이트헤드 연구의 부활과 더불어 생물학, 인지과학, 정보공학 등과 연계되며 폭넓게 재조명되었습니다. 실험생물학자 우타 우리(Uta Uhl)와 철학자 데이비드 그리핀(David Griffin)은 유전자 발현과정이나 생태계 순환을 분석할 때, 개체가 아니라 과정의 연속성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를 선도했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복잡계 이론과의 교차점을 열어 주었고, ‘동적 실재론(dynamic realism)’이라는 후속 패러다임을 확장했습니다. 국내 학계에서도 고 김용옥 교수의 번역·주석 작업이 과정을 존중하는 생태윤리 논의를 활성화했습니다.

1.1. 사건 개념의 핵심

과정철학에서 사건은 네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 내포성: 사건은 과거 사건들의 경험을 주체적으로 흡수해 재구성합니다. 둘째, 창발성: 새로운 질적 특징이 나타나 이전 사건으로 환원될 수 없습니다. 셋째, 목적성: 사건은 단순 인과관계가 아니라 ‘느낌’과 ‘목적적 추구’를 포함합니다. 넷째, 상호성: 사건은 다른 사건을 조건짓고 동시에 그들에게 조건지어집니다. 이러한 사상적 전제는 현대 복잡계 과학의 “비선형 상호작용” 개념과 깊이 연결되며, 사회 현상 분석에서도 유용성을 입증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화이트헤드가 말한 ‘느낌(feeling)’은 사건이 과거를 수용하는 주체적 행위이며, 이는 나아가 ‘형성(concrescence)’ 과정을 통해 새로운 통일체를 산출합니다. 이 통일체는 곧 다음 사건들의 재료가 됩니다. 예컨대 온라인 회의 중 한 발언은 참여자들의 주의와 정동을 흡수하여 집단적 결정이라는 향후 사건들의 기초를 마련합니다. 즉, 과정철학적 이벤트는 정보 흐름을 넘어 가치와 분위기를 포섭하는 심층 구조입니다.

1.2. 관계적 실재론과 경험적 과정

화이트헤드는 “관계가 우선한다”는 테제 아래 실재를 해석합니다. 사건은 외재적 관계(external relation)가 아닌, 본질적으로 내재적 관계(internal relation)로 맺어집니다. 이는 인간 주체를 포함한 모든 존재가 상호 참조적 경험 과정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회학적 응용에서는 개인 행위자가 아니라 ‘사건 간 상호재정의적 네트워크’를 분석 단위로 삼게 됩니다. 예컨대 팬데믹 시기 온라인 수업 전환은 ‘기술·교사·학생·정책’ 사건군이 동시다발적으로 변형되며 구성된 복합 사건으로 파악될 수 있습니다. 관계적 실재론은 윤리적 함의도 내포합니다. 사건이 관계적이라면, 개별 결정이 타인·환경·미래 세대에 어떤 파장을 남길지 사전에 평가하는 책임이 요구됩니다. 최근 기후변화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해수면 상승 예측치를 제시할 때, 추상적 숫자 대신 “미래 사건 연쇄”를 서사적으로 전개함으로써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 역시 과정철학이 제공한 관계 중심 시각의 실천적 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루만 시스템 이론의 자가생산 체계

루만은 사회를 ‘의사소통(communication)의 네트워크’라 보고, 체계를 구성하는 요소 역시 의사소통 사건이라 규정했습니다. 여기서 자가생산은 체계가 외부 환경과 재료를 공유하더라도, 체계의 요소(의사소통)를 새로 만들 능동적 논리를 자체적으로 보유한다는 뜻입니다. 과정철학이 경험 내부의 내재적 흐름을 설명한다면, 시스템 이론은 사건들이 ‘차이’와 ‘경계’를 형성하여 안정적 체계를 유지·변형하는 상위 동학을 탐구합니다. 1960~70년대 독일 사회학계는 합의 중심 기능주의와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 간 경쟁 양상을 띠었는데, 루만은 이 논쟁을 ‘관측(Observation)’과 ‘차이(Difference)’ 개념으로 전환시켜 독자 노선을 걸었습니다. 그는 체계를 “차이를 통해 관측 가능한 대상”으로 정의하고, 체계가 자기 차이를 재생산할 때 ‘의미’가 발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과정은 다층적이며, 법체계·경제체계·교육체계 등 기능분화된 하위 체계들이 각기 다른 코드로 현실을 처리하여 사회 복잡성을 관리합니다.

2.1. 자가생산 개념

자가생산 체계는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1) 요소 자기생산: 체계 요소가 다시 체계 요소를 산출, (2) 경계 성립: 체계와 환경을 구분짓는 차이 유지, (3) 구조 결합: 다른 체계와의 연동을 통해 복잡성을 흡수. 이 프레임은 생물학적 세포에서 글로벌 금융시장까지 폭넓은 사례에 적용 가능하며, 특히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 정보 흐름과 의미 연산을 설명하는 데 탁월합니다. 예컨대, 이더리움 기반 탈중앙화 자율조직(DAO)은 스마트 계약을 통해 의사소통 규칙을 코딩함으로써, 구성원 참여·투표·재정 집행이라는 요소를 자동 생성합니다. DAO가 블록체인이라는 다른 기술 체계와 구조 결합하면, 토큰 경제(code: 희소성)와 거버넌스 절차(code: 투명성)가 동시에 작동하여 새로운 안정성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자가생산 개념의 디지털 시대 확장을 잘 보여줍니다.

2.2. 커뮤니케이션과 의미 체계

루만은 의미를 “가능성의 축소를 통해 복잡성을 다루는 방식”으로 정의했습니다. 사회 체계는 의사소통 사건들이 서로를 관찰·재기술하면서 의미를 갱신합니다. 이를 통해 체계는 무한한 외부 자극 중 선택된 정보를 코드화(code)하고, 그 코드에 따라 행위를 조정합니다. 언론 체계가 ‘뉴스 가치’라는 코드로 현실 사건을 재구성하듯이, 경제 체계는 ‘지불 능력’이라는 코드로 거래 가능성을 평가합니다. 과정철학적 시각은 이때 ‘의사소통 사건’ 자체가 지닌 경험적 질감을 분석해, 체계의 동학을 미시적으로 보강합니다. 

2.3. 시스템 분화와 기능 코드

현대 사회는 기능 분화를 통해 복잡성을 관리합니다. 법체계는 합법/불법, 예술 체계는 아름다움/추함, 과학 체계는 참/거짓이라는 바이너리 코드로 현실을 구성합니다. 루만은 이러한 코드가 체계 내부에서만 유효하며, 체계 간 소통은 번역 장치(medium)를 필요로 한다고 명시합니다. 예를 들어, 의료 체계가 ‘건강/질병’ 코드를 활용해 백신 접종 필요성을 제기할 때, 정치 체계는 ‘권력/비권력’ 코드로 해당 정책을 승인하거나 거부합니다. 과정철학 관점에서 보면, 이때 ‘백신 사건’은 다중 코드의 장에서 서로 다른 의미의 흐름을 낳으며, 각 체계는 자신의 자가생산 로직에 따라 이를 해석하고 행동합니다. 

3. 접합을 통한 복잡계 사회 모델

두 이론의 교차점을 “사건-체계 복합 도식”으로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이 도식은 사건 레벨의 창발적 흐름과 체계 레벨의 구조적 안정성을 동시에 설명하는 다층 분석 틀입니다. 

3.1. 동역학: 사건 흐름과 체계 경계

사건은 끊임없이 발생하나, 모든 사건이 체계적 안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체계 경계는 선택성과 잉여성을 통해 어떤 사건은 내면화하고, 어떤 사건은 배제합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밈(meme)’이 갑자기 확산되는 현상을 분석할 때, 과정철학은 밈 생산-수용의 정동적 강도를 탐구하고, 시스템 이론은 커뮤니티 규칙과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필터링 메커니즘을 해석합니다. 결과적으로 밈 확산이 단순 유희를 넘어 정책 여론 형성에 기여할 때, 사건이 체계 경계를 재조정하는 사례가 됩니다. 또 다른 사례로, 시민 참여 플랫폼 ‘e-people’의 청원 시스템을 살펴보면, 사건-체계 복합 도식이 가진 실천적 효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청원 하나의 등록은 개인적 경험이 공적 절차로 변환되는 사건입니다. 다수의 동의가 누적되면, 해당 의제가 국회·행정부와 구조 결합하며 제도화 경로를 확보합니다. 이 전환 과정에서 정동, 데이터 시각화, 언론 보도 등 다양한 사건들이 체계 경계를 가로지르며 상호작용합니다.

3.2. 적응과 진화: 피드백 고리

사건-체계 복합 도식은 적응 과정을 ‘1차 피드백(사건→체계)–2차 피드백(체계→사건)’ 구조로 모델링합니다. 플랫폼 기업이 이용자 행동 데이터를 수집해 인터페이스를 개편하면, 이는 체계 스스로 사건 패턴을 조정하여 새 요소를 생성하는 자가생산에 해당합니다. 동시에 이용자는 새 인터페이스에서 경험을 재해석하며 새로운 사건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연속 피드백은 복잡계의 자기조직(self-organization) 과정과도 상통하며, “과정철학적 사건의 창발성”과 “시스템적 안정성”이 상호 긴장을 유지하는 동역학입니다. 융합 생태계에서 혁신이 급속히 이루어질 때 나타나는 ‘창발적 공진화(coevolution)’ 현상도 같은 메커니즘으로 설명됩니다. 전기차 시장의 경우, 배터리 기술 향상(사건)이 자동차 제조 체계와 에너지 인프라 체계를 동시에 변화시키고, 이 변화된 체계는 다시 배터리 사건에 투자 및 규제 완화라는 피드백을 제공합니다. 과정철학은 배터리 연구실 내부의 실험·실패·발견 사건을, 시스템 이론은 산업 표준과 정책 네트워크라는 거시 구조를 분석해 전기차 혁신 동역학을 해명할 수 있습니다.

3.3. 사례 연구: 온라인 플랫폼 생태계

구체적 사례로 유튜브 알고리즘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2012년 이후 유튜브는 ‘클릭 수’ 중심 추천에서 ‘시청 시간’ 중심으로 알고리즘을 전환했습니다. 과정철학 관점에서는 시청 시간 지표가 ‘사용자 주의(attention)’라는 정동적 사건을 강조하며, 각 영상 사건 간 관계망을 재배열한 것으로 읽힙니다. 시스템 이론 관점에서는 추천 알고리즘이 플랫폼 체계의 코드(“시청 지속성”)를 재정의해, 광고 수익 구조와 커뮤니케이션 패턴을 자가생산적으로 재구성한 사례로 해석됩니다. 이중 분석을 통해 우리는 ‘시청 습관’이 사건 차원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그 변화가 체계 수준에서 어떤 구조적 결과(예: 장시간 시청 문화, 창작자 수익 모델 다양화)를 낳았는지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유튜브 알고리즘은 공신력 있는 보건 정보와 음모론적 콘텐츠 사이에서 균형을 조정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사건-체계 복합 도식은 콘텐츠 이벤트의 정동적 파급력과, 정책·언론·학계 등 외부 체계와의 구조 결합 과정을 동시에 드러내며, 왜 ‘책임 있는 추천(responsible recommendation)’이 기술적·사회적·윤리적 협업을 요구하는지 설명합니다. 이러한 분석은 플랫폼 거버넌스 설계에 실천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합니다.

3.4. 정책 시뮬레이션과 예측

사회 연구자는 시스템 다이내믹스 모델과 ABM(Agent-Based Modeling)을 결합해 사건-체계 복합 도식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 도입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때, 개별 노동자·기업·정부 정책 사건을 에이전트로 설정하고, 체계 경계와 코드(시장 가격, 사회적 가치)를 동적으로 변화시키면서 실험합니다. 이때 과정철학적 접근은 에이전트 행동 모델에 ‘정동·의미·목적성’ 변수를 추가하여, 전통 경제 모델이 간과해 온 ‘삶의 질’ 지표를 정교화합니다. 정책 시뮬레이션 결과는 다양한 시나리오에서 사회적 비용·편익 곡선을 제시함으로써, 의사결정자가 복잡한 미래 선택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4. 방법론적 함의와 연구 디자인

사건-체계 복합 도식을 실증 연구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중 스케일 분석 기법이 필수적입니다. 질적 인터뷰와 참여관찰은 사건의 내재적 의미를 포착하고, 대규모 로그 데이터 분석은 체계적 패턴을 정량화합니다. 

4.1. 다중 스케일 모델링

첫 단계는 ‘사건 서술(event narrative)’ 작성입니다. 예를 들어 트위터 해시태그 운동을 조사할 때, 주요 트윗·리트윗·언론 기사·오프라인 시위 등 사건을 시간순으로 배열하여 정동적 변곡점을 파악합니다. 다음 단계는 ‘네트워크 동학 모델링’으로, 사건 간 관계를 그래프 데이터로 변환해 커뮤니티 모듈, 경로 길이, 비선형 확산 지수를 계산합니다. 마지막으로 ‘체계 경계 탐색’을 위해 토픽 모델링 및 Luhmann식 코드 분석을 실시하여 의미 구조를 추출합니다. 이러한 통합 방법론은 과정철학의 해석학과 시스템 이론의 시스템 분석을 연결하므로, 복합적 사회 현상에 적합합니다. 더 나아가, 정성·정량 데이터를 결합한 ‘설명-탐색 순환(iterative explanatory–exploratory cycle)’을 채택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첫 번째 라운드에서 설문조사를 통해 신뢰도 높은 통계 모델을 구축한 뒤, 두 번째 라운드에서는 인터뷰를 통해 예외적 사건 및 정동 서사를 탐색합니다. 이후 모델을 수정하고, 세 번째 라운드에서 대규모 시뮬레이션을 수행해 정책 효과를 예측합니다. 이러한 재귀적 흐름은 과정철학이 강조하는 창발성과 시스템 이론이 제시하는 구조적 안정성을 동시에 반영합니다.

4.2. 데이터 수집과 질적-양적 통합

웹 크롤러를 활용해 빅데이터를 수집하되, 사건 단위로 전처리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컨대 하나의 유튜브 댓글 스레드는 단일 사건이 아니라, 댓글 작성·답글·좋아요 갱신 등 복수 사건으로 분해됩니다. 연구자는 각 사건에 타임스탬프·참여자·정동지수를 부여하고, 이후 체계적 클러스터링을 통해 사건 패턴을 식별합니다. 질적 분석 단계에서는 주제 모델링에서 추출한 키워드를 토대로 인터뷰 질문을 설계해, 사건 주체의 경험적 의미를 세밀하게 묻습니다. 양적·질적 데이터를 상호 검증(트라이앵귤레이션)하면, 과정철학적 사건 해석과 시스템 이론적 구조 분석이 균형을 이룹니다. 윤리적 고려도 중요합니다. 개인정보보호법과 알고리즘 투명성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면서, 연구자는 “사건의 재식별(re-identification)” 위험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또한, 체계 분석 결과가 특정 집단을 낙인찍거나 편향된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참여적 검증 회로를 설계해 연구 결과를 공개 토론에 부칩니다. 이러한 절차적 윤리는 과정철학이 제안한 ‘관계 책임’과 시스템 이론이 요구한 ‘다원적 관점’ 모두와 부합합니다.

4.3. 계량적 사례: 한국 디지털 교실 전환 연구

최근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동 지원한 ‘포스트 팬데믹 디지털 교실’ 프로젝트는 과정철학을 바탕으로 수업 사건을 미시적으로 추적하고, 시스템 이론을 기반으로 제도적 효과를 측정한 첫 국가 단위 연구였습니다. 연구팀은 2023년 한 학기 동안 전국 50개 중학교의 온라인·오프라인 혼합 수업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각 수업은 ‘활동 시작’, ‘콘텐츠 제공’, ‘상호 피드백’, ‘평가 및 성찰’ 네 단계 사건으로 분해되었고, 1만 8천여 개의 사건 로그가 체계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사건 데이터는 다시 ‘학교 조직 체계’와 ‘지역 교육 행정 체계’라는 상위 구조와 연계되었습니다. 연계 분석 결과, 디지털 기기 접근성이 높은 지역일수록 학생 반응 시간이 단축되었고, 이는 수업 만족도 체계 코드(참여도/비참여도)를 개선하는 요소로 작동했습니다. 반면 교육 행정 체계가 복잡한 지역에서는 기기 지원이 충분해도 ‘승인 절차 지연’이라는 사건이 추가 발생해 체계 안정화가 늦어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과정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학생이 경험하는 ‘몰입 사건’이 교사·친구·플랫폼과의 관계를 재조직했으며, 시스템 이론적 시각에서는 학교·행정·가정 체계가 자가생산 메커니즘을 통해 디지털 수업 규범을 빠르게 내재화했습니다. 조사 결과는 정책적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지역 간 디지털 장비 격차가 단순 인프라 문제가 아니라 사건 흐름의 시간적 압축을 좌우하는 요인임이 확인되었습니다. 둘째, 행정 절차 간소화가 체계 경계의 마찰력을 줄여, 창발적 학습 방법이 제도화되는 속도를 높인다는 사실이 실증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연구팀은 “과정철학과 시스템 이론의 결합”이 정책 효과 예측 정확도를 15% 이상 높였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는 복잡계 사회에서 교육 혁신을 설계할 때, 사건 중심·체계 중심 분석을 통합해야 한다는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5. 학제 간 교육 및 정책 적용

과정철학은 학생 개개인의 학습 사건을 존중하며, 시스템 이론은 교육 제도가 스스로를 재구조화하는 논리를 설명합니다. 두 이론의 접합은 교육 정책 전반에 세 가지 실천 전략을 제안합니다. 첫째, ‘과정 기반 평가(Performance Process Assessment)’ 도입입니다. 이는 시험 결과라는 정적 지표 대신 학습 사건의 연속적 개선을 추적하는 평가 체계로, 2024년 세종시 시범 학교에서 이미 성과를 보였습니다. 둘째,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자가생산 원리’에 맞추어 설계하는 것입니다. 교사가 외부 획일적 지침이 아니라 자신의 수업 맥락에서 사건 패턴을 재생산하도록 지원하면, 체계 내부에서 혁신이 지속됩니다. 셋째, 학생 주도의 오픈러닝 플랫폼을 구축해 학습 사건의 자발적 순환을 촉진하고, 교육 체계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를 높입니다. 정책 연구 측면에서도 과정철학은 ‘사건의 질’에 주목하도록 요구하며, 시스템 이론은 ‘체계의 코드와 경계’를 재설계하는 기술적 해법을 제공합니다. 예컨대 아동 복지 정책을 설계할 때, 사건 단위로는 ‘상담 접수’, ‘지원 매칭’, ‘사후 관리’가 관찰되며, 체계 단위로는 보건·교육·사법 체계와의 구조 결합이 분석됩니다. 이러한 다층 분석을 통해, 예산 배분 효율과 정책 수용도를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음을 실증 데이터가 보여 줍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2025년 3월 ‘서울 국제 과정철학 컨퍼런스’에서 발표된 패널 토론 결과도 주목할 만합니다. 학계·산업계·정부 관계자가 함께 참여한 이 행사에서, ‘과정철학 기반 사회 혁신 랩’ 설립이 제안되었고, 초기 단계 임팩트 투자도 논의되었습니다. 이는 과정철학이 학술 담론을 넘어 사회적 실험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흐름을 보여 줍니다. 동시에 루만 시스템 이론 연구자들은 ‘자가생산적 정책 핀테크’ 프로젝트를 통해, 복지 지출 프로세스를 블록체인 스마트 계약으로 자동화하는 방안을 공유했습니다. 두 프로젝트 모두 사건-체계 복합 도식을 실험적 혁신 방법론으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6. 데이터 인프라 및 기술 구현 과제

복잡계 사회 분석이 실제 정책 현장에 뿌리내리려면, 고품질 데이터 인프라와 투명한 알고리즘 거버넌스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첫째, 상호 운용성 표준이 필요합니다. 교육, 보건, 산업 등 이질적인 부처·기관이 수집한 로그와 기록을 공통 메타데이터 스키마로 매핑해야만 사건 단위 연동과 체계 수준 모델링이 원활해집니다. 둘째, 설명 가능성과 책임성을 담보하는 AI 도구가 필수입니다. 현재 다수의 예측 모델은 블랙박스 형태라 정책 담당자가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그래프 신경망과 인과 추론 기반 모델을 결합해 “경로 설명(path explanation)”을 실시간 제공하는 시각화 패널을 구축해야 합니다. 셋째, 윤리·보안 체계가 중요합니다. 고립된 네트워크에서는 데이터 왜곡을 감지하기 어려우므로 분산 원장 기술 또는 다중 서명 검증 프로토콜을 도입해 데이터 조작을 예방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술적·제도적 인프라가 마련될 때 사건-체계 복합 도식은 연구실을 넘어 행정 서비스, 기업 의사결정, 비영리조직 전략 수립 등 실무 현장으로 자연스럽게 확산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국제 협력입니다. 인구 구조와 문화가 다른 국가 간에 동일한 사건 패턴이 나타나더라도 체계 코드는 상이하게 작동합니다. 예컨대 핀란드와 일본의 고령화 문제는 ‘돌봄 노동 부족’이라는 공통 사건을 공유하지만, 전자는 복지국가 프레임, 후자는 가족주의적 전통 아래에서 서로 다른 해결 경로를 택합니다. 따라서 글로벌 비교 연구는 지역 특수성과 보편 구조를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풍부한 데이터 풀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협력 모델은 유네스코 사회과학 이니셔티브와 OECD 디지털 정부 프로젝트에서 이미 실험되고 있으며, 향후 다국적 메가 스터디로 발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7. 결론 및 전망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과 루만의 시스템 이론을 결합한 본 글의 모델은 “사건-체계 복합 도식”에 기반합니다. 이 도식은 (1) 사건의 창발적 질서, (2) 체계의 자가생산적 안정, (3) 양자 간 피드백이라는 세 요소로 사회 복잡계를 설명합니다. 디지털 전환과 기후 위기 등 현대 문제는 단일 이론만으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사건 중심의 경험적 세밀화와 체계 중심의 거시적 구조화가 결합될 때, 우리는 정책 설계·조직 혁신·시민 참여 플랫폼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보다 효과적인 개입 전략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연구 과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사건-체계 복합 도식을 기계 학습 모델에 내재화해 자동화된 실시간 위험 감지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둘째, 지역 공동체 데이터 거버넌스에 적용하여, 주민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참여형 의사소통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셋째, 환경·사회·거버넌스(ESG) 평가 체계를 사건 중심으로 재설계해, 조직의 ‘살아있는 프로세스’를 정밀 측정·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과제는 과정철학과 시스템 이론, 즉 두 지적 전통이 교차할 때 열리는 풍부한 학제적 장을 보여 줍니다. 궁극적으로 과정철학은 “왜 어떤 사건이 의미 있는가?”를, 시스템 이론은 “그 사건이 어떻게 구조를 형성하고 재생산하는가?”를 묻습니다. 두 질문이 통합될 때, 우리는 기술·경제·문화·생태라는 다층적 복잡성을 탐색하는 새로운 연구 지평을 획득합니다. 이러한 통합적 관점은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21세기 사회에서 과학과 인문학의 유기적 결합을 실천적으로 가능케 하며, 실천의 장에서 인간 존엄·생태적 지속가능성·정보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이론적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참고 사이트

참고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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