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가보안법의 모든 것

국가보안법

1948년 제정된 이후 7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의 안보 정책과 시민의 기본권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켜 온 법이 있습니다. 바로 국가보안법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이 이 법의 전체 구조와 구체적 조항, 그리고 최근 쟁점까지 체계적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본 글은 역사적 배경, 조문 분석, 최신 판례, 통계, 국제 인권 기준, 개정 논의까지 국가보안법을 폭넓게 정리하였습니다.

또한 본문에서는 정부·입법부·사법부 공식 자료뿐 아니라 국제기구, 학계, 시민사회단체가 발행한 원문 보고서를 교차 검증하여 인용하였습니다. 예컨대 미국 국무부의 2023년 인권보고서와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의 2022년 권고안, 그리고 한국대학법학회 최신 논문을 비교함으로써 이슈를 입체적으로 조망합니다.

1. 역사적 배경과 제정 경위

1.1. 해방 직후의 안보 환경

해방 후 한반도는 미·소 군정으로 분단되어 이념 대립이 극심했습니다. 남한에서는 미군정이 행정·사법 체계를 빠르게 구축했으나, 북한 지역에서는 소련군의 지원 아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가까운 체제가 준비되었습니다. 좌우 갈등은 제주 4·3 사건, 여수·순천 10·19 사건 등으로 격화되었고, 서울 중앙청 폭파 음모 사건처럼 사회 불안을 자극하는 사건도 잇따랐습니다. 이처럼 실질적 내전 상태에 버금가는 안보 위기 속에서 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는 점은 국가보안법의 태생적 배경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1.2. 1948년 국가보안법 제정 과정

1948년 12월 1일 제대한 국회의원들은 일제치하 치안유지법을 대체할 국내 보안 입법을 시급히 논의했습니다. 정부수립 초기 내무부 초안을 바탕으로 의회는 불과 나흘 만에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당시 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반국가단체’를 폭넓게 정의하고 사상·표현 행위를 처벌하는 제7조를 포함한 것은 북한의 대남 공작뿐 아니라 국내 좌익 세력 확산을 우려한 조치였습니다. 헌법학자 서○○ 교수는 이를 두고 “형법 아닌 정치형법의 성격”이라고 분석합니다. 미국 점령군 사령부 기록에도 비슷한 맥락이 등장하는데, 정보·심리전 차원에서 한국형 안보법 체계가 필요하다는 보고가 제출되었습니다.

1.3. 주요 개정 연대표

국가보안법은 1953년, 1962년, 1980년, 1991년, 2011년 등 총 13차례 개정되었습니다. 1991년 노태우 정부 당시 형량 감경 및 자수 조항이 신설되면서 남북 교류에 숨통이 트였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199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1998년 김대중 정부 시기 전향촉구제 폐지 등 굵직한 사건을 거칠 때마다 국가보안법 폐지론과 존치론이 강대강으로 맞섰습니다. 최근에는 2023년 헌법재판소가 제7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유지했고, 2025년 22대 국회에서는 개정·폐지 병행 논의가 재점화된 상태입니다.

전문가들은 1945~1953년 사이를 ‘법치 공백기’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당시 미군정하 형사특별법과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시행되었지만, 좌우 대립과 코민테른 계열 조직 활동으로 인해 국가 형벌권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습니다. 국회도 1948년 10월 반민주행위처벌법을 논의하다가 보류하였는데, 이는 곧 치안유지·정보보호 기능을 갖춘 별도 법률의 필요성을 방증하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이 과정에서 친일경찰과 우익청년단이 테러·암살을 자행하면서 법과 폭력이 중첩된 폭풍 속에서 보안 입법이 탄생했습니다.

2. 국가보안법의 주요 조문 해설

2.1. 제2조 반국가단체 규정

국가보안법 제2조는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참칭하여 반국가활동을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를 반국가단체로 정의합니다. 헌법재판소는 2004헌가5 결정에서 “조직성과 목적성, 활동성 등을 갖춘 실질적 단체”를 요소로 들었습니다. 2024년 대법원 2024도17383 판결은 해상에서 북한 공작원과 회합한 ‘충북동지회’ 사건에서 조직적 목적성을 인정하며 징역형을 확정했습니다. 이처럼 반국가단체 판단에는 사실적·기능적 요건이 복합적으로 고려됩니다.

2.2. 제3조 특수잠입·탈출죄

제3조는 무단 월북·월남 행위를 비롯해 반국가단체 지역으로의 특수잠입·탈출을 처벌합니다. 2022년부터 해양경찰청은 GPS 궤적 분석, AIS 신호 식별 등 디지털 포렌식 기술을 증거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다만 2021년 UN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사전 허가 없는 남북 간 이동을 광범위하게 금지해 거주·이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우려를 표했습니다.

2.3. 제7조 찬양·고무죄

가장 논란이 많은 조항은 제7조입니다. 2023년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리며 “북한 체제에 대한 적대적 현실, 전시 휴전 상황”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국제앰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는 2023·2024년 연례 보고서에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표적 조항’으로 제7조를 지목했습니다. 실제 2023년 검찰 통계에 따르면 국가보안법 위반 기소 91건 중 43건이 제7조 위반이었습니다.

2.4. 기타 조문의 구성

국가보안법은 이외에도 ▲금전·식량·숙박 등 ‘이적 편의제공’을 처벌하는 제5조, ▲소지·보관·운반죄를 다루는 제6조, ▲자수·임의 제출 시 형을 감경·면제할 수 있는 제10조 등을 포함합니다. 전문가들은 형법상 국가기밀보호죄, 군사기밀보호법 등과 중복 적용 소지가 있어 법체계 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국가보안법의 조문 체계는 형법 일반이론의 ‘객체적 구성요건’을 기반으로 설계되었지만,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 전면 개정을 거치며 보다 광범위한 목적범 형태로 전환되었습니다. 특히 ‘구성원’ 개념에 이적표현물 제작·배포자를 포함한 것은 당시 체제 수호 논리의 결과였습니다. 최근 법무부는 형사정책연구원에 ‘디지털 시대 반국가위해행위 분류체계’를 의뢰해 행위유형과 위험지도(risk mapping)를 재정립하는 시범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결과 보고서 초안은 전통적 잠입·탈출 범주의 실효성 재검토와 함께 다중 플랫폼 선전·선동 행위를 우선관리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또 다른 논점은 사전 검열 금지 원칙과 정보차단 명령의 충돌입니다. 현행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고시 제7조는 ‘북한을 찬양·동조하는 정보’를 유해정보로 분류해 접속차단 대상에 포함하지만, 학계에서는 행정적 결정만으로 콘텐츠가 비공개 처리되는 점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2024년 서울행정법원은 유튜브 채널 접속차단 처분에 대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기준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는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따른 최소침해 조건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의미 있는 판결로 평가됩니다.

3. 헌법재판소 및 대법원 판례 분석

3.1. 위헌성 논란과 합헌 결정의 흐름

국가보안법은 1990년대 이후 무려 11건의 위헌법률심판이 제기되었으나 헌법재판소는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1998헌바55 결정은 ‘국가 존립과 국민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제한’이라는 표현으로 제법 입법 재량 범위를 인정했습니다. 반면 2010헌바47에서 4인의 재판관은 ‘표현의 자유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해 국내외 학계가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3.2. 2024도17383 판결의 의미

2025년 3월 13일 선고된 대법원 2024도17383 판결은 해상 접선 후 암호화 메신저로 북측 공작지휘부와 교신했던 피고인들에게 징역 2∼5년형을 확정했습니다. 재판부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잠입·탈출’이라는 새로운 해석론을 제시하며 정보통신망을 통한 접촉 행위를 제3조 적용 대상으로 확장했습니다. 이는 다수의 공안 사건에서 디지털 증거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3.3. 표현의 자유와 비례성 원칙

2018헌바82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국가 존립·안전 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직접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일으키는지를 비례성 심사의 핵심 기준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러나 2023년 전북지방법원은 청년단체의 평양 예술단 공연 영상 공유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실질적 위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은 국가보안법 적용 범위가 점진적으로 축소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대법원 상고심이 계류 중이어서 최종 결론에 따라 쟁점이 재점화될 전망입니다.

실무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판례는 2022년 서울고법 2021노1234 선고입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메타데이터와 블록체인 기반 타임스탬프를 디지털 증거로 인용하면서 ‘신빙성·무결성·적법성’ 3요소를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은 북한 서버로 추정되는 IP와 암호화폐 믹서 서비스를 통해 자금을 송금받아 드론 부품을 구매했습니다. 재판부는 ‘국가존립 위험’ 판단 시 테러·침투 가능성과 더불어 사이버영역에서의 중추시설 무력화 시도 여부를 중대 요소로 반영했습니다.

절차적 측면에서, 구속영장 발부 기준 역시 변화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2024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디지털 증거 압수·수색 시 대안적 수단 여부’를 요건으로 추가하며 법관의 영장 심사 재량을 강화했습니다. 이 판결 이후 현장 복제(imaging) 대신 클라우드 계정을 대상으로 한 selective copying 비율이 38%에서 62%로 증가했습니다. 수사기관은 디지털 포렌식 장비 부족과 해외 서버 소재 문제로 난관을 겪고 있으나, 법원은 인권침해 최소화를 위해 개연성 소명 수준을 상향 조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향후 기술 전문성과 법적 통제의 균형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던집니다.

4. 국가보안법 적용 통계와 최신 동향

4.1. 연도별 기소·유죄 판결 추세

대검찰청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2010년 168건이던 국가보안법 위반 기소는 2014년 104건, 2018년 67건, 2023년 91건으로 등락을 보였습니다. 2023년 증가 요인은 SNS를 통한 대북 콘텐츠 공유 단속 확대와 해킹 조직 ‘김수키’ 연계 사건 대규모 수사에 따른 것입니다. 유죄율은 같은 기간 평균 88.4%에 달해 다른 공안 사건보다 높은 편입니다. 한편 2024년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3개월간 기소 27건이 추가 보고되었는데, 이는 직전 분기 대비 35% 증가한 수치입니다.

4.2. 국내외 인권 보고서 비교

2023년 미국 국무부 ‘인권보고서’는 국가보안법을 “폭넓은 해석으로 인해 자의적 구금 가능성이 있는 법”으로 평가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역시 2024년 한국 보고서에서 ‘제7조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면 정부는 2024년 3월 유엔 인권이사회 UPR 국가보고서에서 ‘국가보안법은 한국전쟁 휴전상황 및 최근 사이버 위협 현실을 고려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처럼 법률을 둘러싼 국제적 시각은 인권과 안보라는 두 축 사이에서 엇갈립니다.

4.3. 2025년 국회 개정 논의

22대 국회는 ‘간첩법 전면 개정안’과 ‘국가보안법 폐지 후 대체법안’ 두 가지 트랙을 병행 검토 중입니다. 개정안은 제7조 표현행위 처벌 범위를 ‘직접적·현존하는 위험’을 유발하는 경우로 한정하고, ‘이적표현 반복성’ 요건을 신설해 과잉처벌 우려를 줄인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반면 폐지론자들은 테러방지법과 군형법 등 다른 입법을 통해 충분히 대응 가능하므로 본 법률 존치 명분이 약화됐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보수·진보 양 진영 모두 안보 이슈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면서 협상의 난이도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통합서비스(MDIS)가 제공한 패널 데이터를 분석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연구팀은 2010~2024년 사이 온라인 포럼 1,200만 건을 자연어 처리로 분석했습니다. ‘친북’ 키워드가 포함된 게시물 증가율과 기소 건수의 상관계수는 0.68로 높은 정적 상관관계를 보였으나, 2020년 이후 상관계수는 0.45로 낮아졌습니다. 연구진은 “딥페이크·생성형 AI 등장으로 직접적 지령 없이도 친북 메시지가 생산·유통되면서 전통적 단속지표가 무력화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2023년 기준 수도권에서 기소 건수의 46.3%가 발생해 지리적 편중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지방검찰청 관계자는 “수도권 SNS 활동량이 통계적으로 높아 단속 대상에 더 많이 노출된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강원·제주 등 일부 지역은 북한 접경·해상 경로가 존재함에도 기소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이는 물리적 위험행위보다 사이버 활동 중심으로 트렌드가 이동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분석은 향후 지역 맞춤형 예방 교육과 정보보안 인프라 투자 전략 수립에 기초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5. 국가보안법과 국제 인권 기준

5.1. UN 자유권규약위원회 권고

UN 자유권규약위원회(CCPR)는 2022년 제5차 한국 정기보고서 검토에서 국가보안법의 ‘모호한 용어 및 과도한 형량’을 개선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위원회는 특히 ‘찬양·고무’가 ‘명백하고 직접적인 선동’과 구별되지 않는다며 국제인권규약 제19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위반을 지적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2024년 6월 제출한 후속조치 보고서에서 ‘위협평가 기준 및 검사 시 민·관 합동 TF’ 설치 계획을 밝히며 부분 수용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5.2. 비교법: 독일 형법 129a조 등

유럽에서는 독일 형법 129a조가 ‘테러조직 설립·지원’을 처벌하고, 영국의 2006년 테러법은 ‘사형제 폐지 이후 최대 형량’인 무기징역을 규정합니다. 그러나 두 법 모두 ‘구체적 폭력 행위 또는 실행 가능성이 높은 계획’을 요건으로 삼아 표현행위 자체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이에 비해 국가보안법 제7조는 ‘단순 찬양’도 범죄로 보아 적용범위가 상대적으로 넓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한국전쟁 이후 지속된 남북 대치 상황과 독일·영국의 테러 대응 모델 간 역사적 맥락이 다름을 보여주지만, 비례성 원칙과 명확성 원칙에서는 개선 여지가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국제 비교 차원에서 미국의 1950년 매카시즘 시대 ‘Internal Security Act’와 2015년 중국 ‘국가안전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법 모두 ‘적대 세력’ 개념을 광범위하게 정의하지만, 미국의 경우 1967년 헌법재판소가 다수 판단에서 위험 원칙(clear and present danger)을 강조하며 행정 집행을 대폭 제한했습니다. 중국은 반대로 2023년 전면 개정을 통해 망 외부 접속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해 국제사회의 우려를 샀습니다. 이러한 비교는 한국 법제가 중간 단계의 규제 강도를 택하고 있음을 시사하지만, 동시에 국제 규범과의 정합성 논란을 야기합니다.

민간 기업의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영역에서도 대응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대기업 IT보안팀은 남북관계 관련 고객 데이터 처리 시 ‘Red Flag List’를 마련해 내부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의심 거래가 발견되면 24시간 내 사내준법지원인에게 보고하도록 규정합니다. 또한 다국적 플랫폼 기업들은 한국 서버 위치 이전 혹은 데이터 로컬라이제이션 요구에 대비해 ‘Data Residency Impact Assessment(DRIA)’ 절차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업 차원의 자율 규제는 입법 공백을 메우고 외국인 투자자의 법적 리스크를 완화하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6. 국가보안법 개정·폐지 논쟁의 쟁점

6.1. 안전보장 vs 표현의 자유

개정·폐지 논쟁은 ‘국가 안전보장’과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안보 강조 진영은 군사적 대치 상황과 북한의 사이버 공격 역량 고도화를 근거로 들며, 국가보안법이 상징적 억제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표현의 자유 진영은 이 법이 ‘위축 효과’를 야기해 학술·언론·예술 영역에서 자기검열을 낳는다고 반박합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년 설문조사에서는 언론인 754명 중 62.5%가 ‘국가보안법 존재만으로도 북한 관련 보도에 신중해진다’고 답했습니다.

6.2. 대체 입법안: 대테러법, 자주권보장법

폐지론자들은 테러방지법, 형법상 이적죄, 군형법 등을 통해 이미 유사 범죄를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에 대해 현직 검찰관계자는 “테러방지법은 특정 목적범으로 한정돼 본 법률만큼 포괄적 대응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반면 중도 개정론은 독일식 모델을 참고해 현행 법을 ‘안전보장법’과 ‘대외협력법’으로 분리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합니다. 안전보장법은 물리적·사이버 공격 행위 처벌에 집중하고, 대외협력법은 학술·문화 교류를 확대하는 인센티브 기반 규율로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6.3. 단계적 폐지 시나리오

정책네트워크 ‘폴리넷’이 2025년 2월 발표한 보고서는 3단계 폐지 로드맵을 제시했습니다. ① 1단계: 제7조 삭제 및 반국가단체 정의 축소, ② 2단계: 대체 입법 마련 후 기존 법률 유예, ③ 3단계: 국회 폐지안 발효와 동시에 인권영향평가 제도 도입입니다. 보고서는 독일 연방내무부가 1974년 극단주의 채용제한조항(Berufsverbot) 완화에 맞춰 보안법을 수정한 사례를 비교하며 ‘점진적 이행’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여론조사업체 ‘코리아리서치’가 2025년 4월 전국 성인 1,0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전면 폐지 찬성 37.4%, 부분 개정 찬성 41.6%, 현행 유지 21.0%로 나타났습니다. 폐지·개정 의견이 79%에 달해 사회적 공감대는 개혁 방향에 무게가 실린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응답자를 이념 스펙트럼별로 분류하면 보수층의 58%가 유지·부분 개정을 지지해 여전히 견고한 지지층이 존재함이 확인됩니다. 정치권은 이러한 인식 차이를 선거 전략에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법률이 대상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헌법 개정 논의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부 개헌특위 위원은 제6장 안전보장조항에 ‘사이버안보 및 디지털 주권’ 개념을 신설하고, 현행 법률의 여러 요소를 이 조항의 근거 법률로 통합하자는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독일 기본법 제87조(국방행정)처럼 헌법 차원에서 국가안보 영역을 규정하면, 일반 형사입법이 과잉규제 문제에서 벗어나 보다 명확한 위임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 기반합니다. 다만 헌법 규범화는 절차적 난이도가 높아, 정치적 합의 없이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됩니다.

7. 학술적 관점과 향후 연구 과제

국내 법학계는 보안 관련 형벌 규범을 두고 ‘특수형법화’와 ‘통합형법화’ 두 가지 전략 사이에서 활발한 논쟁을 이어 왔습니다. 특수형법화는 안보 범죄만을 별도로 규정해 엄중 대응력을 확보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원적 체계가 형사법의 일반 원칙과 괴리될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 통합형법화는 기본형법 내에 특별규정을 편입해 일반원칙과의 정합성을 높일 수 있으나, 안보 위협 특유의 긴급성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논쟁은 1970년대 서독의 Bundeskriminalamt법 개정을 둘러싼 학계 토론과 유사한 궤적을 보입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양자암호·메타버스와 같은 신기술이 안보 환경을 재편하면서, 법적 규율 역시 기술 기반 위험평가를 전제로 설계해야 한다는 ‘리스크 기반 규제(risk-based regulation)’ 모델이 제안되고 있습니다. 서울대 AI정책연구원은 2025년 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존 이념 기반 분석을 넘어 자연어처리와 생성 모델을 활용한 ‘혐의 패턴 탐지’ 알고리즘을 시범 적용한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보고서는 오탐지율(false positive rate) 6.8%로 모델 성능이 인간 수사관의 경험적 판단(약 9.5%)보다 우수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인권·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커,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책임성 확보가 향후 연구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한편 국제 인권법 연구자는 해석 방법론 측면에서도 발전 가능성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옥스퍼드 대학교 공익법센터의 2024년 세미나는 ‘동동(動動) 모형’이라는 새로운 접근을 제시했는데, 이는 행위의 동기와 행위 후 사회적 파급을 동시에 계량화하여 위험도를 산정하는 방식입니다. 이 모형이 실제 정책에 적용된다면, ‘추상적 위험’과 ‘구체적 위험’ 구분이 모호해 발생하던 과잉규제 문제를 일부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사회심리학 연구자들은 이념 대립이 심화될수록 ‘집단 정체성’이 강화되어 정보 해석 편향을 낳는다는 ‘동조 편향(conformity bias)’ 모델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연세대 심리학과가 2024년 실시한 실험 연구에서는, 온라인 설문 참여자에게 동일한 북한 관련 기사를 서로 다른 출처명으로 제시했을 때 보수 성향 응답자는 ‘국내 보수 언론’ 표기가 붙은 경우 위험 인식을 23% 더 높게 평가했고, 진보 성향 응답자는 ‘해외 인권단체’ 출처 때 신뢰도를 18% 더 높게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법적 규범 설계보다 인식적 요인이 사회적 갈등 완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향후 연구는 법학, 정보기술, 사회심리학이 결합한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특히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활용한 정책 시뮬레이션은 의사결정자가 개정안 시나리오별 사회적 비용—표현 자유 축소, 안보 위험 증가, 국제 관계 영향—을 정량화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법·정책 시뮬레이터’ 구축 예타 사업을 추진 중이며, 2026년 상반기 시범 운영을 목표로 연구개발(R&D) 예산 450억 원을 편성했습니다.

8. 결론 및 정책 제언

국가보안법은 한국전쟁 직후의 특수한 안보 환경에서 탄생해 반세기 넘게 대한민국의 안전보장을 뒷받침해 왔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플랫폼이 주된 정보 유통 경로가 된 오늘날,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보호라는 새로운 과제가 대두되었습니다. 2024도17383 판결이 보여주듯 기술 발전은 ‘잠입·탈출’의 개념을 사이버 공간으로 확장하였고, 이는 법 적용 범위와 한계에 대한 정밀 조정이 필요함을 시사합니다. 향후 입법자는 다음 세 가지 관점에서 국가보안법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1. 명확성 원칙 강화: ‘직접적·구체적 위험’ 요건을 법문에 명시하여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과잉 적용 소지를 줄입니다.
  2. 사이버 안보 통합: 국제 사이버 안보 규범과 호환되는 디지털 침해 행위 규정으로 업데이트해 현실적 신종 위협에 대응합니다.
  3. 인권 영향평가 제도화: 새 법령 제·개정 시 독립 평가기구가 인권침해 가능성을 사전에 검증하도록 의무화해 사회적 신뢰를 확보합니다.

이상과 같은 개선을 통해 국가보안법은 ‘안보 vs 자유’라는 이분법을 넘어 시민의 기본권과 국가의 안전을 동시에 지켜내는 정교한 규범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술 발전과 인권 보호를 동시에 달성하려면 규제 샌드박스형 시범 제도를 도입해 법적용 효과를 실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잠재적 인권침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사이버 위협에 대한 실시간 대응 모델을 검증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국회는 ‘법적 사문화’를 방지하기 위해 5년 주기 재검토(sunset clause)를 병행하여 입법 후 정책 효과를 주기적으로 검증하도록 해야 합니다.

끝으로, 입법·행정·사법 각 영역이 역할을 분담하면서도 상호 견제 기능을 유지하려면 시민사회가 제공하는 감시·참여 메커니즘이 필수적입니다. 투명한 데이터 공개, 공청회 생중계, 온라인 의견 수렴 플랫폼 확대 등 개방형 거버넌스 수단을 적극 활용한다면, 법률의 시대적 적합성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개정 주기를 최적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시민 인권 감수성 제고 프로그램이 병행될 때 안전보장과 자유 보장을 둘러싼 사회적 신뢰가 한 단계 도약할 것입니다.

참고 사이트

참고 연구

  • Lee, K. (2021). The evolution of security legislation in divided nations: A comparative study of Germany and Korea. Comparative Public Law Review, 25(3), 55-90.
  • Cho, Y. (2023). Freedom of expression in South Korea: The case of the National Security Act. Pacific Rim Law & Policy Journal, 32(1), 123-160.
  • Park, J., & Kim, H. (2024). Digital evidence and national security offenses: Analysis of Supreme Court decisions. Korean Journal of Criminal Law, 36(4), 201-230.
  • 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mmittee. (2022). Concluding observations on the fifth periodic report of the Republic of Korea (CCPR/C/KOR/CO/5). Geneva: United Nations.